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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ug 13. 2024

904. yirgacheffe, 이 귀부인을 어찌할꼬?

덜 볶음과 더 볶음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 쉬운 여자 없듯

 커피 로스팅을 무대뽀정신으로 독학하고자 했던 배경에는 주위에 로스팅하는 지인이 많기에 모르는 것, 막히는 것은 언제든지 자문을 구할 수 있다는 든든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커피사부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혼자힘으로 해결하려 한다. 막힐 때 자료를 찾아보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내용을 공부할 수 있으며 이렇게 배운 것들은 머릿속에 쏙쏙 박혀 내재화하기 쉽다.

 커피 사부는 예전에 커피로스팅은 밥 하는 것과 같다며 뜸을 잘 들여야 맛있는 커피가 된다고 했다. Round2에서는 뜸 들이는 시간을 줘서 light roasting과 Medium roasting 중간 맛을 내보고자 한다.


 Round1에서 로스팅했던 원두를 거의 소진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용으로 사용하기로 한 원두밖에 남지 않았다. 당장 소비할 원두가 없어 구입한 5종의 생두 중 가장 풍미가 좋았던 Ethiopia yirgacheffe aricha G1 natural을 먼저 로스팅하기로 했다. 

 yirgacheffe는 Ethiopia 남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커피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고도 1800미터 이상의 고지에서 강한 햇볕과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다. 커피열매를 따서 바로 건조하는 내추럴방식으로 가공된 생두는. 커피체리의 당분과 향이 커피콩에 잘 스며들어 과일향, 꽃향이 나게 된다.


 yirgacheffe의 풍미는 현란하다고 할까?, 아니면 화려하다고 할까? 커피의 귀부인이란 별명이 잘 어울린다. Round1에서는 덜 볶아서 가벼운 맛이었다. 실제로는 너무 가벼워 향은 근사했으나 입안에 남는 뒷 맛이 없었다.

 예전 술을 많이 마시고 다닐 때, 중국음식점에 가면 자주 마시는 것이 연태고량주였다. 기름진 중국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은 역시 도수 높은 고량주다. 당시 연태고량주 가격은 5만 원으로 마시다 보면 음식값보다 술값이 더 나오는 것이 부작용이다. 어느 날, 주인이 같은 모양의 연태고량주를 가져와 3만 원짜리라고 한다. 한잔 마시고는 놀랬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감촉, 향과 맛은 5만 원짜리와 다를 바 없었으니 입안에 여운이 남지 않았다. 아!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Round1에서 볶은 가벼운 맛의 yirgacheffe를 맛보곤 당시 저가의 연태고량주가 문득 생각났다. 로스팅 포인트인 하이(신맛이 좋고 단맛이 표출)보다 2단계 정도 덜 볶은 시나몬(도드라진 신맛, 1차 파핑시작) 정도로 로스팅했었다. 향과 산미는 좋았지만 입안에서 맴도는 뒷맛이 없고 너무 가벼워 날아갈 것 같았다.

* 인터넷에 있는 로스팅 포인트는 아래와 같지만 시나몬부터 하이까지는 절대적인 평가가 아닌 상당히 주관적인 면이 있는 듯하다. 

라이트: 건조된 상태 

시나몬: 도드라진 신맛 1차 파핑시작

미디엄: 추출해서 마실 수 있는 기초단계

하이: 신맛이 좋고 단맛이 표출

시티: 균형 잡힌 강한 느낌

풀시티: 진한 맛 에스프레소용

프렌치: 두드러진 쓴맛, 기름이 표출되기 시작

이탈리안: 타는 냄새 쓴맛, 탄맛


 뜸 들이는 시간을 늘려 잘 볶아 놓으면 뒷맛과 무게감이 살아날 것 같다. 이번에는 뜸을 많이 들이기로 하고 조금 더 볶기로 했다.

 로스터를 160도에서 2분 예열하고 200g을 저온에서 6분간 은근하게 로스팅했다. 구웠다기보다는 수분 날리기에 가깝다. 약간 노르스름해져서 220도로 온도를 높였다. 10분 후 popping이 활발해져 온도를 160도로 낮추고. 저온 로스팅을 했다. 총시간은 25분 소요되었다.

 저온 로스팅 온도가 조금 낮은 것 같아 조금 높여서 다시 로스팅하기로 했다. 로스터를 160도에서 2분 예열하고 200g을 저온에서 6분간 은근하게 로스팅했다. 노르스름해져서 220도로 가열했다. 11분 후 popping이 발생해 온도를 170도로 낮추고. 저온 로스팅을 했다. 총시간은 25분 소요되었다. 1차 로스팅보다 조금 더 구워진 듯하다. 


 이 품종은 로스팅포인트가 하이로 상대적으로 덜 익혀야 하며 많이 익힐 경우 산미와 향이 줄어든다. 예가체프 고유의 특징이 사라지므로 오버로스팅하지 않아야 한다. 색상을 보면 미디엄로스팅과 하이의 중간정도가 된듯하다. 3일 후 시음하는 날이 기대된다.

 드디어 시음하는 날, round1에 비해 바디감이 살고 단맛과 뒷맛이 남지만 산미는 약해졌으며 향은 줄어들었다. 

 round2 1차는 조금 덜 익힌 느낌이었으나 산미가 올라왔고 바디감과 단맛이 높아졌다. 과일향이 느껴졌으나 round1에 비해서는 향이 적어졌다.

 round2 2차는 가장 잘 볶아냈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산미와 풍미가 1차보다 떨어졌으며, 말해주지 않으면 yirgacheffe aricha를 마시고 있는 것을 모를 것 같다.


 아내는 round2 2차 맛도 좋지만 round2 1차와 round1에서 느꼈던 산미와 풍미가 좋다고 한다. 고객이자 마루타인 아내가 만족해하지 않으니 이번 roasting 역시 실패했다. 

 Ethiopia yirgacheffe가 왜 커피의 귀부인이라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aricha G1 natural은 비위 맞추기 어렵다. round1에서는 덜 볶았으며 round2에서는 조금 더 볶았다. 커피노트에 적었다. ‘round1 방식 또는 round2 1차 레시피대로 roasting 하는 것이 바람직함’ 


 이 까다로운 귀부인을 어찌할꼬? 초보는 아직도 어쩔 줄 몰라 덜 볶음과 더 볶음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 쉬운 여자 없듯.


주의 및 경고 1: 커피에 대해 일자무식인 생초보가 좌충우돌하며 로스팅하는 이야기이므로 따라 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주의 및 경고 2: 로스팅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시간이 소요된다. 취미를 붙이지 못할 때는 로스팅된 원두를 구입하는 것이 맛있고 저렴하다. 

주의 및 경고 3: 앞으로 계속되는 커피이야기는 전문적이지 못하므로 커피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전문서적 구입 또는 전문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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