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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ul 11. 2024

890. 말을 늦게 하더니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한 지 불과 2개월 만이다.

 손녀가 말을 늦게 해 부모들이 걱정하는 눈치지만 아직 2살도 되지 않기에 때가 되면 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18개월 차에 단어를 몇 개 사용하고 2세가 되면 간단한 문장을 이해하고 말하기 시작한다. 2세가 넘었는데도 단어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전문적 진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손녀가 단어를 사용한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22개월 차에 문장을 이해하고 말하기 시작했으니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아니다. 갑자기 말문이 트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때가 되면 걷고, 뛰고, 말을 한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sequence에 따라


 2주 쉬고 손녀 보러 출근한 날 손녀는 갑자기 放言(방언)이 터졌는지 말도 잘하고 노래도 한다. 어찌 된 일인지? 2주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어른들이 말하는 것도 따라 하니 신기하다.

 외국에 있는 이모에게 ‘이모’ 소리도 수줍어 못하던 손녀가 영상통화 화면을 보더니 ‘이모 사랑해’하며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비가 오면 끊어집니다. 해님이 방긋 솓아 오르면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옵니다.’ 노래도 해준다. 물론 박자도 맞지 않고 어눌한 발음이다.

 손녀는 그동안 말하고 싶어 어떻게 참았을까? 아이들마다 말문이 트이는 시기가 있나 보다.

 아내에게 ‘갑자기 말문이 빵 터졌지?’했더니 그 말도 따라 한다.

‘갑자기 빵 터졌어요’

‘뭐가 빵 터졌지?’

‘풍선이 빵 터졌어요’

가족들 모두 빵 터졌다.


 집에 와서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도 따라 한다.

‘얘들아, 놀이 시간 아니야. 쿨쿨 잘 시간이야. 이불에 누워.’

아하, 선생님들이 낮잠 재울 때 이렇게 말씀하시는구나.

 가끔 부정확한 정보도 전달한다. 어린이집에서 손가락을 물린 적이 있었다.

‘찬우가 엄지손가락 물어서 아야 했어’

‘그래서 잉잉했어?’

‘응, 아파서 잉잉했어’

‘찬우한테 뭐라고 그랬어?’

‘찬우야 물지 마. 물어서 미안해’

부정확한 정보지만 단어로만 이야기하던 손녀가 문장으로 이야기하니 신기하다.


 어린이집에서 손녀를 원시켜 아파트단지 내 놀이터에 데리고 갔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이곳에서 에너지를 발산해야 저녁도 맛있게 먹고 잠도 잘잔다. 어린이집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

 어린이집 친구가 자동차모양의 미아방지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이 멋있어 보였나보다.

‘연준이는 빠방목걸이 있어요.’

‘나는... 없어요.’

이상하게도 손녀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 있었다.

 집에 와서 할머니가 시킨다.

‘할아버지 목걸이 사주세요. 해봐’

손녀가 내게로 와서 몸을 꼬면서 이야기한다.

‘할아버지 목걸이 사주세요.’

이번에는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돈이 없어도 사주지 않을 재간이 없다.

빚을 내서라도 사줘야 한다.


 혼자 잠을 잘자던 손녀를 재우려 하지만 요즘 떼가 늘었다.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

‘이제 코 잘 시간이야.’

‘싫어, 아빠하고 잘 거야’

‘아빠는 오늘 늦어, 그럼 엄마하고 자자’

‘싫어 안 잘 거야, 기분이 안 좋아’

말도 늘고, 떼도 늘고, 이제 서서히 자아가 형성되어 가는 시기인가 보다.

아직 꼬물거리는 놈이 ‘기분이 안 좋아’ 하니 기가 막힌 오늘은 2돌 되기 전이며,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한 지 불과 2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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