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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ug 11. 2024

903.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1

김정운 쓰고 그리다. 21세기북스刊

 좋아하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겠다며 잠수를 탔다. 그가 엮어낸 책들을 즐겨봤었고 출간할 때마다 화제작이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발간되는지도 몰랐다. 관심에서 멀어진 것일까? 아니면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요즘 자주 이용하는 광교 푸른숲도서관에서 작가검색을 하다 읽지 않은 책이 검색되었다. 2019년 5월 발행해 10일 만에 2쇄를 발행했으니 베스트셀러 정도는 아니더라도 화제를 불러 모을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프롤로그 11p, 에필로그 40p로 말쟁이 글쟁이답게 엄청 길다. 아! 이번에는 그림쟁이답게 그립도 있고 사진도 있다. 


프롤로그; ‘슈필라움(Spielraum)의 심리학

 흥미롭게도 독일어에만 존재하는 이 단어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놀이 Spiel’와 ‘공간 raum’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아이들과 관련해 ‘놀이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개념이 없다면 개념에 해당하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슈필라움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없다는 것은 물리적 공간이 아주 없거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세계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경험한 한국의 사회심리학적 문제는 대부분 슈필라움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적 여유공간’은 물론 성찰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여유공간’도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모두들 ‘한번 건드리기만 해 봐라’하면서 산다.

 모든 동물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한다. 밀집공간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동차만 타면 절대 안 비켜주는 거다. 남자에게 존재가 확인되는 유일한 공간은 자동차 운전석으로 유일한. 슈필라움이라는 이야기다. 내 앞의 공간을 빼앗기는 것은 ‘내 존재’가 부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분노와 적개심에 가득 차 전전긍긍하는 거다.


아이들은 독립된 자기 방이 처음 생기면 너무 행복해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방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다. 숨길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방해받고 싶지 않은 슈필라움을 지키기 위해서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의식’을 공간으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슈필라움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단어다.


 ‘심리적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근대 부르주아 출현 이후 생긴 주거상의 가장 큰 변화는‘남자의 방’의 출현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에게도 남자들처럼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얼마든지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

 우리는 슈필라움의 가치를 무시하고 살아왔다. 공간만 있으면 슈필라움이 저절로 생겨날 것으로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도 나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싼 가구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슈필라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취향과 관심이 구현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고도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지겹지 않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어떤 연고도 없이 충동적으로 내려와 살게 된 여수의 자연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여수의 바다, 하늘, 사계절을 찍은 사진도 넣자고 출판사에 이야기했다. 오랜 방황 끝에 찾아낸 내  슈필라움을 둘러싼 다양한 풍경을 혼자만 즐기기엔 너무 아까워서다. 사진은 김춘호작가가 감당했다.


조금 긴 - 에필로그: 천국에서는 ‘바닷가 해 지는 이야기’만 합니다!

 여수 남쪽 섬의 내 작업실 ‘미역창고(美力創考)’공사는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낡은 미역창고 개조공사는 생각보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섬’이라 그렇다는 겁니다. 뭐라 항의라도 할라치면 연장 싸들고 섬에서 나갑니다. 섬에 들어오겠다는 인부가 없으니 매번 ‘을’입니다. 그래서 덕분에 인격이 아주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폐선 직전의 여객선 손님은 매번 나 혼자입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하는 생각에 슬퍼집니다. ‘지난 오십 년’은 밀려 살았으니, ‘앞으로의 오십 년’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교수를 그만둔 지 벌써 팔 년째입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미술전문대학을 마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여수로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여수 남쪽 끝의 섬으로 들어갑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걸까요? ‘공간충동’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 들으려면 내 공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정말 하기 싫은 일, 그러니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일, 저녁마다 TV채널을 돌리며 등장인물을 욕하며 늙어가는 것, 을 피하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 허접한 외로움을 담보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이 ‘내 공간’이었습니다. 


 명색이 ‘나름 화가인데 일본 유학파 화가에 어울리는 작업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나고 나니,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내 공간‘을 갖고 싶었던 겁니다. 박치호화가 작업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막연하게 꿈꿨던 화가의 작업실이 그대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박화가에게 대뜸 ‘이 화실을 내게 팔라’고 했으나 화가의 아틀리에는 쉽게 파는 것이 아니라며 에둘러 내 가당치도 않은 욕심에 핀잔을 주었습니다. 

 몇 주가 지난 후 박화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망한 횟집이 있답니다. 스무 평 남짓한 낡은 식당은 화가의 작업실로는 최고였습니다. 바다도 인접해 있어 길게 펼쳐진 갯벌 위로 석양이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해안에는 오직 그 집뿐으로 적당히 쓸쓸해 그림 그리기에는 최적의 위치였습니다. 주인이 창고를 비워주겠다고 하고 월세도 30만 원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드디어 내가 꿈꿨던 ‘바닷가 작업실’을 여수 여자만 끄트머리에 갖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하늘로 날아갈 듯했습니다.


 기막힌 ‘바닷가 작업실’에서 한 이년을 지내고 나니 이곳 생활이 너무 행복해졌습니다. 매일 작업실에 들어설 때마다 ‘아 좋다. 너무 좋다.’를 연발했습니다. 욕심이 좀 더 생겼습니다.  하지만 여수땅값은 오를 대로 올라 경치 좋은 곳은 능력에 맞지 않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매력적이지 않아 바로눈앞에 밀물 썰물이 오가는 바닷가 작업실을 갖고 싶었습니다. 남은 선택지는 여수 남쪽의 섬뿐입니다. 여객선으로는 40분이 걸리는 위치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미역창고는 100평 남짓했습니다. 창고 앞으로 펼쳐진 섬과 바다, 그리고 절벽의 풍경에 가슴이 너무 쿵쾅거렸습니다. 


 초등학교 때 몸이 약해 일 년 정도 집에서 쉬며 만화책만 봤습니다. 만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다시 학교를 다녔을 때 미술시간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상의 바다와 섬을 그렸습니다. 섬의 절벽이 굽이치며 바다로 이어지는 그림을 담임선생님이 칭찬하셨습니다. 

 그때 그 그림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받은 칭찬이었기 때문입니다. 거의 오십 년이 지난 후 내가 구입한 여수 미역창고의 풍광은 초등학교 때 그렸던 그 그림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미역창고’는 거의 신축하다시피 했습니다. 천장은 아주 높게 만들었습니다. 단층이지만 이층보다 높였습니다. 한쪽 벽은 죄다 책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책들이 1차로 섬에 내려왔습니다. 5톤 트럭 한가득 내려왔습니다. 공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책장에 책을 꽂고 싶었습니다. 천장까지 이어진 책장 가득 책이 꽂혀 있는 모습이 환상적이라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빈 책장을 채우며 늙어가기로 했습니다. 이건 최근 내가 한 생각 중에 가장 훌륭한 생각입니다. 주제별로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빨리 그 책을 읽고 소화해 새로운 주제의 책을 쓰고 싶어서 그럽니다. 책을 사서 책장에 꽂는 일은 내가 가장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마역창고’의 책장 공사를 하며 깨달았습니다.


 물론 담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외로움’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외로움을 담보해야 ‘책을 매개로 한 내적 대화’가 진실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을 더 느낍니다. 외로움으로 피하려 관계로 도피하는 걸 봅니다. 

 요즘도 혼자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면 외롭고 낯선 공간에서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어리석은 일이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외로움을 견디며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습니다.

     

 천국에서는 ‘바닷가 해 지는 이야기’만 합니다! ‘남 욕하는 이야기’, ‘돈 버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역창고 앞에서는 매일 해가 집니다. 동해나 제주의 석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수평선이 한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는 처음에만 ‘멋있다!’했다 이내 심드렁해집니다. 눈길 둘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비처럼 생긴 여수바다는 다릅니다. 섬이 많아 시선 멈추기 힘들고 갯벌에 물이 드나드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이래저래, 난 천국에서도 말이 참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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