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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Sep 15. 2024

918. 생각의 지도(2) (리처드 니스벳著,김영사刊)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여기서 동양이라 함은 동아시아. 즉 중국과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한국과 일본을 칭한다. 서양인이라 함은 유럽문화권의 사람들을 칭하고 유럽계 미국인은 미국 내에서 동양계가 아닌 백인, 흑인, 라틴아메리카계를 포함한다. 

     

동양의 도와 서양의 삼단논법

 그리스인들은 개인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보았고 진리를 발견하는 수단으로 논쟁을 중시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주는 원칙적으로 단순하고 파악가능한 곳이었다. 따라서 철학자의 과제는 사물의 독특한 속성들을 파악하고 사물을 범주화하여, 그 범주의 보편적인 규칙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인간을 사회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조화라고 생각했다. 그 조화란 도교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융합’이었고, 유교에서는 ‘인간들 사이의 화목’을 의미했다. 중국 철학의 목표는 진리의 발견보다는 道(도)였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추상적인 사고는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되는 실용적인 경향이 강했다. 우주는 매우 복잡한 것이기에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서로 얽혀있고, 그 안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인간들은 마치 그물처럼 얽혀있다고 믿었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은 전체 맥락에서 어떤 대상을 따로 떼어내어 분석하는 일에 거부감을 느꼈다. 


동양의 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 

 1930년대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딕과 제인’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딕이 뛰는 것을 보아라. 딕이 노는 것을 보아라. 딕이 뛰면서 노는 것을 보아라.’ 한 독립된 개체로서 개인의 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이 문장들은 서양의 개인주의적 관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반면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형이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구나. 형은 어린 동생을 사랑해. 그리고 동생도 향을 사랑한단다.’ 이 문장들은 독립된 개인의 개별행위가 아닌 개인과 주변인물 간의 관계를 부각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처음 접하는 교과서에 이미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동양문화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는 커다란 사회심리적 차이가 존재한다. 동양인들은 상호의존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를 전체의 일부분으로 생각하지만, 서양인들은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를 전체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여긴다. 동양인들에게 있어서 성공과 성취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영광을 의미하나,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개인의 업적을 의미한다. 동양인들은 인간관계속에서 조화롭게 적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지만 서양인들은 개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동양인들은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간관계의 조화를 추구하지만, 서양인들은 자기에게 충실하고 인간관계를 희생해서라도 정의를 추구한다. 동양인들은 위계질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집단의 통제를 수용하지만, 서양인들은 형평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를 선호한다. 동양인들은 모순과 논쟁을 회피하지만 서양인들은 법률, 정치, 과학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논쟁을 끌어들인다.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현대의 동양인들은 고대 동양인처럼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 전체 맥락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사건사이의 관계성을 파악하는데 익숙하며 세상이 복잡하고 가변적인 것이라 믿는다.  또한 세상의 구성요소들은 서로 얽혀있고, 세상사는 양극단 사이에서 순환을 반복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그러한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협동과 조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현대 서양인들은 고대 그리스인처럼 세상을 분석적이고 원자론적으로 바라본다. 사물을 주변 환경과 떨어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변화가 일어난다면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진행될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개인이 그러한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의미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은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양인은 작은 부분보다 큰 그림을 보기에 사물과 전체 맥락을 연결시켜 지각하는 경향이 있고, 전체맥락에서 특정 부분을 떼어내어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낯설어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사물에 초점을 두고 주변 맥락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에 사건과 사건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편이다.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1991년 아이오와대학 물리학 박사과정에 있는 중국인이 논문경연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고 이의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에 그는 교수직을 얻는데도 실패했다. 그해 10월, 그는 지도교수를 총으로 쏘고 근처의 학생과 시민에게 총을 난사한 후, 자살했다. 미국신문들은 인간적인 결함을 부각하는 보도를 했고, 중국 신문들은 범인이 처했던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다.


 ‘세상은 복잡한 곳’이라는 동양인들의 생각이 어쩌면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서양인들은 지나치게 단순한 모델을 가지고 세상을 파악하는 약점이 있지만, 동양인들은 수없이 많은 인과적 요인들 모두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예외적인 사건에도 그리 놀라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서양인들의 ‘단순성 추구경향’과 동양인의 ‘복잡성 추구경향’은 인과관계에 대한 접근방식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세상을 바라보고 조직하는 방법에도 적용된다.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중국과 타이완 대학생과 미국 대학생들을 비교한 연구결과다. 그림대신 3가지 사물의 이름을 제시하고(예를 들면 팬더, 원숭이, 바나나), 관련되어 있는 2개를 고르게 했다. 미국 대학생들은 ‘동물’ 범주의 팬더와 원숭이를 고른 반면, 중국과 타이완 대학생들은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다는 관계에 근거해 원숭이와 바나나를 고르는 경향을 보였다. 

 서양인들은 사물 간 유사성을 판단할 때 동일한 규칙에 의해 범주화될 수 있는지 여부에 영향을 받는다. 반면 범주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동양인들은 규칙과는 무관한 ‘사물들 간의 표면적인 유사성’에 많이 영향을 받는다.


 ‘범주’는 명사에 의해 표현된다. ‘곰’은 성질, 몸집, 커다란 이빨과 발톱, 사나운 모습등에 주목하면 된다. 그리고 ‘곰’이라는 명칭을 그 특성들과 결합하면 나중에 그런 특성을 가진 동물을 볼 때 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된다. 반대로 관계는 동사에 의해 표현된다. 타동사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두사물과 그 사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행위를 이해한다는 의미다. 던진다는 동사에는 손과 팔을 이용하여 어떤 사물을 새로운 장소로 옮긴다는 의미다 동사는 명사보다 상대적으로 애매하기에 기억하기 어렵다. 동사는 면사에 비해 대화 맥락가운데 의미가 변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옮기는 과정에서 의미가 변하기도 한다. 단순 명사는 여러 언어에 걸쳐 의미가 일치 하지만 동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동양인들은 세상을 관계로 파악하고 서양인들은 범주로 묶일 수 있는 사물로 파악한다. 이러한 차이는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에서의 문화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동양의 어린이들은 관계를 주목하도록 양육되고 서양의 아이들은 사물과 그것들의 범주에 주목하도록 양육된다. 여기에 덧붙여 언어의 문화차이 또한 일정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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