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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Dec 15. 2024

957.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1)

Epictetus著, page2刊

 出刊(출간) 제목은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이다. 原題(원제) ‘Enchiridion’이 현대사회의 핫한 이슈로 변신했다. 띠지에는 Enchiridion의 핵심이 되는 문구가 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를 넘어선 것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이 과연 그렇게 간단할까? 속는 셈 치고 읽어봐야 할 책이다. 문고판같이 크기도 작고 글자도 크며 책이 16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속는 셈이 아니라 속아도 크게 손해 보지 않을 책이다. 


 Epictetus는 고대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로 서기 55년에 노예로 태어났으며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의 몸이었다. 젊은 노예의 성실하고 열정적인 성격에 감동한 스토아 철학자 무소니우스 루푸스의 가르침을 받아 자신만의 철학을 갈고닦았다.

 로마에서 추방되어 그리스 니코폴리스에 철학학교를 세우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심지어 황제조차 그에게 가르침을 청할 정도였다. 그는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으며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Epictetus가 남긴 스토아철학을 바탕으로 로마를 통치했다.

 Epictetus는 저서를 남기지 않았으나 제자인 아리아노스가 스승의 강의와 대화를 정리해 책으로 만들었다. 제목 ‘Enchiridion’은 ‘손에 들고 다닐만한 작은 것’ 즉 핸드북이란 뜻으로 Epictetus 철학의 정수만을 담은 요악집이다. 또한 손에 쥐는 칼, 단도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 책이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암시였는지도 모른다. 


작품 해제 (독일계 유태인 사회학자 Albert Salomon)

 몽테뉴는 서재에 Enchiridion 사본을 갖고 있었고 프리드리히대왕은 전쟁 중에도 이 책을 읽었다. 근대가 시작되던 시기에 스토아주의가 다시 부상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그 시대에 필요한 철학적, 도덕적, 사회적 조건들이 한데 집결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로마 스토아주의는 전제왕권시대의 도덕적, 사회적 지향점들이 이성의 철학이라는 돌파구로 집약된 외롭고도 용감했던 영혼의 철학이었다.

 삶의 양식으로서의 철학은 언제나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스토아주의 역시 예속의 시대에 자유를 주창하며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자 삶의 많은 요소가 로마스토아주의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근대라는 이름으로 독립적인 사상가가 탄생했으며 세속문명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지식인들이 등장했다.  


 근대는 중세 교회의 권위에 기반을 둔 절대정치라는 질서가 무너진 시기였다. 인간의 도덕적 문제를 강조한 스토아주의는 기존의 가치를 허물고 새롭게 재건하고자 한 급속한 전환의 시대에 적합한 철학이었다.

 에픽테토스는 스토아 철학을 ‘삶의 원리이자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요컨대 Enchiridion은 스토아주의의 이론과 실천이 함께 제시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부와 건강, 평판, 명성, 권력,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 우리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있다. 하지만 생각과 의지, 욕망, 선택 등은 통제가능 영역에 속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하고 대자연의 일부이자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

 스토아학파 사람들은 예수의 전위적인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들은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사람처럼 일상을 영위했다. 그들의 삶은 무대 위의 연극이었고 잠시 초대받은 만찬이었다.


 Enchiridion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실행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을 설명하고 있으며 철학자로서 함양해야 할 덕목들도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기술하고 있다. 사회적 법도인 규율에 관한 문제부터 결혼을 앞둔 남녀의 성적 금욕이나 참된 사유를 이끌어내는 법까지 매우 합리적인 주장을 펼친 스토아학파의 원칙들이 인간의 행위를 풍요롭게 하는 원리와 철학으로 정리되어 작은 책에 담겼다. 


 Enchiridion은 자기 구원에 이르는 철학적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모든 지식인들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이후 등장한 세속 사상가들도 신의 은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철학의 등장에 환호했다.

 Epictetus와 스토아학파는 다른 언어권으로 전해지면서 철학자, 신학자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가톨릭교회와 성공회교회에는 로마 스토아주의 전통을 기독교 스토아주의로 발전시키려 한 주교들도 있었다. 또한 자연종교 옹호자들은 스토아주의를 보편타당하고 이성적인 종교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부상한 스토아주의는 근대에 세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1. 기독교 전통과 현대 합리주의 철학의 접점을 모색했다. 2. 자연종교의 이상적인 토대를 확립했다. 3. 도덕이 자율성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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