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2021)

by 바삭새우칩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은 가끔 사람 마음을 건드린다.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나란히 앉아 영화를 고르던 어느 늦은 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라는 제목이 화면에 떠올랐다.

아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어른이긴 하지?”

나는 대답 대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영화는 40대 중반의 사토 마코토가 우연히 SNS에서 첫사랑 카오리의 이름을 발견하며 시작된다. 그 순간부터 그의 기억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펜팔로 시작된 만남, 격렬하고 낭만적인 연애, 그리고 설명 없는 이별. 다시 현재로 돌아온 그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카오리의 모습을 보며 허무함을 느낀다. 찬란했던 과거와 조용한 현실 사이에서 그는 문득 자신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이 영화는 단순히 첫사랑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 그 단어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시간. 책임을 진다는 것, 누군가를 놓아준다는 것, 혹은 그저 살아가는 것. 영화는 그 모든 질문을 조용히 건넨다.


영화 속 사토의 모습에서 오래 전의 나 자신을 떠올렸다. 20대 초반, 홈페이지 제작 회사에서 선배와 단둘이 밤을 새우며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단지 컴퓨터를 조금 다룬다는 이유로 채용되어, HTML과 플래시 책을 펼쳐놓고 독학으로 코드를 짜던 날들. 지금은 전혀 다른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때의 어설픔과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하필 그 시기에 나도 어설픈 사랑이라는 걸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미완성이고 불안정했지만, 그래서 더 뜨거웠던 감정들. 상대를 이해하지 못했고, 표현은 서툴렀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그 시절.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이 영화처럼 나도 특별한 이유 없이, 일상 속에서 그냥 그렇게 이별했었던 것 같다. 영화가 소환한 시간은 단지 과거의 장면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던 어떤 감정의 원형이었다.

친구의 미니 홈피에 감성 글귀를 남기고, 당시 유행하던 인디음악을 MD 플레이어에 구워 들으며 밤을 지새우고, 느린 인터넷 속도에 짜증 내며 메신저로 마음을 전하던 시절. 그리고 무엇보다, 정해진 게 없었기에 더 뜨거웠던 사랑. 그 모든 것이 겹쳐 보이며, 영화는 나를 조용히 그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배경은 일본이지만, 그 시절의 감정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그렇게 사랑했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설명 없이 떠났고,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갔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그 시절을 품은 채 지금 이 자리를 견디는 일 아닐까.


이 영화는 일본 작가 모에가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찾아보니 이 작가는 원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트위터에 140자씩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담은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 글들이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에는 웹 플랫폼에 연재되었고,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마침내 넷플릭스에서 영화화되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런 배경을 알고 나니, 이 영화가 훨씬 더 깊숙이 다가왔다. 실제 작가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감정들이 더 진짜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더 깊이 공감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짧은 문장에서 시작된 개인의 감정이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의 정서와도 잘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카오리 역을 맡은 이토 사이리는 이 영화에서 유독 인상 깊었다. 다시 그녀를 보게 된 건 [그 남자를 주웠다] 였는데, 그 작품에서도 카오리와 비슷한 결의 인물을 연기했다. 감정을 겉으로 크게 드러내지 않지만, 내면의 여운이 길게 남는 그런 역할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말투나 표정, 어깨에 힘이 빠진 걷는 모습까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진다.

화장을 지운 얼굴로 거리에서 마주치면 스쳐 지나칠 수도 있지만, 돌아서면 문득 떠오르게 되는 뭐 아무튼 그런 얼굴. 그래서인지 그녀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늘 어딘가에 남아 있는 과거처럼 느껴진다. 지워지지 않는 사람, 잊히지 않는 기억. 어쩌면 우리 모두 주변 어딘가에 그런 얼굴 하나쯤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는 문장의 반어처럼 들린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해주는 영화. 그리고 그 '어른'이라는 말이, 이제는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게 들리는 영화였다.


결국 SNS 속 그녀는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내가 알던 그녀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기억 속 ‘그녀’를 만들고, 이상화하고, 사랑했다. 진짜 그녀는 그냥 자기 삶을 잘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 사실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조용해졌다.


좋았던 시절은 어쩌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착각마저도 분명히 사랑이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누구는 그 시간을 최악이라 기억하고, 누구는 아련하게 그리워하며, 또 누구는 아예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분명 사랑했고, 이별했고, 어른이 되었거나, 혹은 아직도 그 시절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중이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아니, 어른이 되기 싫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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