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夜行) 아닌 주행(日行)

인천시 중구 개항장거리

by 바삭새우칩

점심부터 아이들과 그림 그리기 행사에 참여했다. 행사장은 이른 시간부터 북적였고, 아이들은 벌써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내는 퇴근 후 부랴부랴 행사장으로 오느라 아침부터 굶고 점심도 챙기지 못한 채 아이들을 돌보느라 분주했다.


"나 진짜 배고파...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어."


아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금방 밥 먹을 수 있을 거야."


민망한 듯 웃으며 대답했지만, 가려던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 중이었다. 문을 여는 5시까지는 한 시간이 남아 있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개항장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구청 주차장에서 자유공원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제물포 구락부와 인천시민애집은 이미 몇 번 가본 익숙한 곳이었다. 하지만 중구청 앞쪽, 곧 야행 축제가 열리는 개항장 거리는 오랜만이었다. 차로 지날 때마다 고풍스럽다고 느꼈지만, 이렇게 걸어보니 그때와는 또 다른 얼굴이 보였다. 골목마다 숨은 듯 자리한 전시관과 박물관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근대문학관, 한국근대건축물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 오래된 건물들은 겉보기와 달리 내부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체험 요소도 제법 알찼다.

문학과 역사를 게임처럼 체험할 수 있는 구성이었고, 전시관 입구마다 비치된 팜플릿에 도장을 찍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아이들은 도장을 모으며, 미니어처를 관찰하고 그림도 그리며 전시장을 하나하나 채워갔다.

"아빠, 여기 도장 다 찍으면 뭐 주는 거야?"


큰아이가 물었다.


"글쎄, 선물은 없지만... 그래도 다 찍으면 기분 좋잖아."


웃으며 답했다.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던 박물관이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흥미로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구성과 분위기, 콘텐츠까지 제법 공을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덧 식사 시간이 가까워졌다. 아내가 미리 찾아둔 중국집 '도래순'으로 향했다. 다 떨어진 간판과 정갈한 메뉴판, 문을 열자 퍼지는 기름 냄새가 오래된 기억처럼 익숙하게 스며들었다.

"딱 봐도 옛날 스타일 중식 맛집이네."


내가 말하자, 아내는 메뉴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잘 찾았지?"


나에겐 오래된 규칙이 하나 있다. 메뉴판에 '고기튀김'이나 '덴뿌라'가 당당히 적혀 있다면, 망설임 없이 시킨다. 그리고 처음 가보는 중국집이라면 늘 짬뽕이다. 짜장면의 평가는 아이들의 몫이고, 나는 짬뽕의 깊이를 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고기튀김과 짬뽕, 짜장면, 간짜장을 시켰다. 고기튀김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했고, 간도 알맞게 배어 있었다. 한입 베어무는 순간, 입안 가득 익숙한 안도감이 퍼졌다. 짬뽕은 맵지 않고 국물이 맑고 담백했다. 야채와 해물도 신선했고, 국물 한 숟갈에 하루의 피로가 조금씩 풀려가는 기분이었다.

아이들도 짜장면을 사이좋게 나눠 먹고, 고기튀김을 손에 들고 맛있게 먹었다. 조용한 식당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고단함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따뜻한 위로를 주고받았다.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자 축제는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거리에는 청나라 상인, 개항시대 외국인, 대한제국 병사, 옛날 드레스를 입은 숙녀, 양복 차림의 신사들까지… 시간의 틈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람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리허설이 한창이었고, 음악과 대사가 번갈아 공기를 울렸다.

"저 사람들 진짜 옛날 사람 같아! 영화 같아!"


아이가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그랬다. 마치 오래된 사진 속으로 들어간 듯한 거리 풍경과 배우들의 움직임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낮부터 이어진 더위와 피로로 우리는 결국 야행의 본무대를 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이 축제, '개항장 야행'은 인천 중구 개항장 일대에서 열리는 지역 문화 행사다. 밤이 되면 근대 건축물 사이로 조명이 켜지고, 거리 곳곳에서는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낮에도 역사 전시와 가족 단위 체험이 잘 준비돼 있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이 축제는 봄과 가을, 두 계절에 걸쳐 열린다. 가을에 다시 열린다는 소식을 떠올리며 오늘의 아쉬움을 조용히 접어두었다. 작년에도 이 축제를 찾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더 다채롭고 알차게 구성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풀어낸 방식도 인상적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음에는 꼭 밤까지 머물 수 있기를, 그때도 오늘처럼 함께 웃을 수 있기를. 그렇게 우리는, 다시 돌아올 길을 하나 더 마음에 새기며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차 안, 아이들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아내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운전대를 잡은 채 생각에 잠겼다.


요즘 들어 '좋은 아빠 되기 휴일의 기록'이라는 브런치 매거진을 쓰고 있어서인지, 주말마다 더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꾹꾹 참는다. 짜증도 덜 내고, 화도 줄이고, 목소리도 낮췄다. 물론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오늘도 "이거 사줘", "저거 해줘" 하는 아이들의 작은 땡깡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꾹 참고 웃으며 넘겼다.


이 더위 속에서도 그럭저럭 무사히 외출을 마친 아이들에게, 그리고 하루 종일 참아낸 나 자신에게 작은 칭찬을 보낸다. 물론 아침부터 공복으로 뛰어다닌 아내에게도. 우리 넷 모두, 오늘 참 잘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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