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송산 공룡알화석지
화성 송산에 있는 회사 공장에 가끔 외근을 간다. 기계를 테스트하거나 장비 점검이 필요한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선다. 일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 송산 휴게소를 지나 시화호를 막 벗어나기 직전, 오른쪽 도로 옆에 공룡 조형물이 보인다. 실제 크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물 앞에 서 있는 그 거대한 모습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처음엔 무심히 지나치기만 했다. 몇 번째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그 모습이 들어왔다. ‘어, 공룡이네. 박물관인가?’ 하고 가볍게 넘겼고, 나중에 가족들과 지나게 되면 한 번쯤 들러보자는 생각만 남겼다.
얼마 전,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숙제는 ‘공룡과 관련된 곳을 다녀와 글을 써오기’였다. 인천이나 서울에서는 공룡 하면 ‘아기 공룡 둘리’ 외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문득 그 공룡 조형물이 생각났다. 더운 날씨에 그냥 드라이브 삼아 다녀오자며 가볍게 계획을 세웠다. 박물관 같은 곳이겠지 싶었다.
송산 IC를 빠져나온 뒤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다. 생각보다 멀었고, 길가엔 공룡 모형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택 담벼락 밑에 덩그러니 놓인 모형은 조금 뜬금없었고, 주변 풍경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점점 기대에 들뜬 표정이었다.
도착해 보니 박물관은 아니었고, ‘방문자 센터’라는 이름의 안내소였다. 입구를 지나자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나는 그 바람에 잠시 멈춰 섰다.
안쪽에 계시던 분들이 “덥죠, 어서 들어오세요” 하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지역 해설사 분들이었고, 전시실 구경은 이쪽부터 보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나는 아이들 옆에 서서 패널에 적힌 설명을 천천히 읽어주었다.
“1999년, 간척사업을 하던 중 이 일대 갯벌에서 공룡알 화석이 처음 발견됐대. 진흙 바닥에 둥글고 투박한 돌덩이가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공룡알이었다고 하더라.”
시화호 간척지에 있던 옛 섬 여섯 곳에서 180개가 넘는 공룡알과 둥지가 발견됐고, 그중엔 알이 다섯 개에서 열두 개씩 모여 있는 둥지도 있었다. 그 학술적 가치 덕분에 천연기념물 제414호로 지정되었다는 설명도 덧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조용히 들었다. ‘진짜 알이야?’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센터 안은 시원했지만, 실제 공룡알 화석은 이곳이 아니었다. 팸플릿엔 멀리 떨어진 간척지 한가운데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더위에 지쳐 그냥 돌아갈까 싶기도 했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가보기로 했다.
위치를 묻자 해설사 분은 “이 더위에 다녀오기 쉽지 않아요”라며 웃으며 겁을 주셨다.
차에서 선크림과 모자를 챙겨 들고 방문자 센터 밖 화석 산지로 향했다. 가는 길엔 진흙 냄새와 벌레 소리가 따라붙었고, 예전엔 바다였을 듯한 들판 한가운데 어르신 몇 분이 맨발로 진흙밭을 걷고 있었다. 이 뜨거운 날씨에, 맨발로 느릿하게 걷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평온해 보였다. 주거지와는 꽤 떨어진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신기하게 느껴졌고, 한편으론 이 더위에 과연 건강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다.
습도는 높았고 햇살은 뜨거웠다. 중간중간 벤치는 있었지만 그늘은 부족했고, 셔츠는 등에 달라붙었다. 아이들도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며 점점 입이 삐죽 나왔다. 곧 칭얼대기 시작했다. 물은 없냐, 언제 도착하냐, 덥다, 힘들다. 그 말들이 이해는 됐지만, 흘러내리는 땀 속에서 대답하기도 벅찼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도착한 곳엔 공룡알이 있었다. 아니, ‘공룡알’이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투박한 돌 화석들이었다. 크고 둥근돌 같았고, 어릴 적 놀이터 구석에서 굴러다니던 자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음속으론 ‘이게 다야?’ 하고 중얼거렸지만, 아이들이 들을까 봐 입을 다물었다.
둘째가 큰소리로 누나를 불렀다.
"누나, 공룡알이야!"
“진짜 공룡알이야?”
더위에 지쳐서도 들뜬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도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공룡알을 보고 다시 방문자 센터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도 쉽지 않았다. 습기와 더위는 여전했고, 돌아가는 길은 더 멀고 고단하게 느껴졌다. 주차장에 도착한 뒤 차를 에어컨으로 식히는 동안, 다시 센터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그 몇 분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찬 공기 하나만으로도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공룡알만 보고 돌아가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멀리서 본 송산 그린시티 전망대가 떠올랐다. 그냥 들러보기로 했다. 차를 몰고 올라가는 길은 한적했고,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토요일·일요일 휴무'라는 안내문이 입구에 붙어 있었다.
장난하나, 전망대라는 곳이 주말에 문을 닫는다니. 오지 말라는 뜻인가 싶었다. 우리처럼 올라온 차들이 몇 대 더 있었고, 이내 조용히 돌아나갔다.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 집으로 향하던 중, 송산 휴게소에 들렀다. 이 근처 외근 나올 때면 종종 집에 들고 가던 간식이 생각나 송산 포도 호두과자를 하나 샀다. 따뜻할 때 먹으면 더 맛있어서 이번에도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었다. 막 구운 듯 따끈한 과자를 한 입 베어 물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그런데 이름이 조금 낯설었다. 호두과자에 포도라니, 과연 포도 향이 나는 건가 싶었다. 조합이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휴게소에서 파는 호두과자 중에선 손에 꼽을 만큼 맛있었다. 먹는 동안만큼은 더위에 지쳤던 몸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
아이들은 금세 잠들었고, 차 안은 숨소리로 가득 찼다. 에어컨은 시원했지만 티셔츠는 여전히 눅눅했고, 몸은 지쳐 있었다.
공룡도 이 더위엔 그냥 화석으로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휴게소를 나와 고속도로에 올랐을 때, 다시 방문자 센터 앞 공룡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일 때문에 여러 번 지나치기만 했던 그 풍경이 오늘은 다르게 느껴졌다.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그곳에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다는 사실이, 첫째의 숙제를 마치면서 내 마음속 오래된 숙제 하나도 덜어낸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언젠가 둘째 녀석의 공룡 관련 숙제로 또 오게 된다면, 그땐 절대 덥거나 추운 날엔 안 올 거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