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어색함.

파리, 텍사스 (1984)

by 바삭새우칩

둘째를 심하게 혼냈다. 장난이 지나쳤지만, 아이는 울면서도 끝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음 날 퇴근길, 운전하며 전날의 장면을 곱씹었다. 좋은 아버지란 어떤 사람일까. 아이를 다그치고 나서야 후회하는 내 모습은 매번 같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바라본 저녁 하늘 너머로, 문득 한 영화가 떠올랐다.


[파리, 텍사스]는 내가 태어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세상에 나온 오래된 영화다.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기억을 잃고 떠났던 한 남자가 몇 해 만에 돌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말없이 걷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설명하지 못한다. 잊고 지냈던 아들과 다시 마주하고, 함께 아내를 찾아 나선다. 그 침묵의 여정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이어지고, 결국 말보다는 행동으로 마음을 전하려는 시도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20대 초반, 지역 영화제에서였던 거 같다. 특별한 기대 없이 들어간 상영관에서 우연히 마주한 작품. 당시엔 어떤 장면이 인상 깊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막연히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어떤 사람일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 상상했던 모습이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닮아 있을까. 그 물음이 마음에 남아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유튜브에서 짧은 리뷰를 찾아보며 기억을 더듬었지만, 정작 영화를 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지역 도서관 디지털 자료실에서 어렵게 DVD를 구했다. 예전보다 훨씬 더 깊숙이 마음에 들어왔다. 빔 벤더스의 영화는 평범한 풍경조차 낯설고 아름답게 담아낸다. [퍼펙트 데이즈]의 감독이기도 한 그는, [파리, 텍사스]에서도 황량한 사막과 적막한 하늘을 통해 감정의 온도를 더 짙게 만들었다. 침묵과 풍경이 만들어내는 정서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아버지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늘 어색하다. 청소년 시절에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 그 단어는 거의 꺼낼 일 없는 말이 되었다.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불러보았지만, 입 밖으로는 끝내 내지 못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파리, 텍사스]를 보는 내내 그 망설임이 스크린 위에 조용히 번져갔다.


트레비스의 아내 제인은 떠나며 아이를 맡긴다.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을 내려놓듯 아이를 그의 형 집 앞에 두고 떠나며 매달 양육비를 보낸다. 사랑하면서도 등을 돌리는 선택, 그것이 모성애의 한 방식이라면, 트래비스는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을 지우기 위해 떠났고, 돌아와서야 비로소 아버지가 되려 한다. 늦은 부성애는 조용해서 종종 오해를 산다. 하지만 트래비스는 말 대신 걷고, 말 대신 아이와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부스 너머, 유리창 사이로 제인을 바라보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제인에게 자신이 어떤 남자였는지, 어떻게 그녀를 떠났는지를 털어놓는다.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한 채 처음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 침묵 속에는 죄책감도, 자기 연민도,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그녀를 붙잡지 않는다. 아이를 제인에게 돌려주고, 자신은 조용히 떠난다.


그 장면을 보며 나도 어떤 날들을 떠올렸다. 말하지 못한 마음, 닿지 못한 손끝, 늦게 꺼낸 안부들. 그리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직접 사랑을 말하진 않았지만, 작은 행동과 눈빛, 곁에 앉아 있던 시간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것이 트래비스의 모습이었고, 내가 뒤늦게 알아버린 어떤 아버지의 진심이기도 했다.

내 아버지도 말수가 적었다. 무뚝뚝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묵직한 침묵이 집 안에 오래 머물렀다. 돌아가신 지 오래되어 이제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는지 선명하진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사랑 속에서 내가 자라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남겨진 사진들 속에서도 아버지의 말보다 뒷모습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다정함을 떠올릴 때면 잠시 멈추게 된다.


나도 아버지가 된 지 10년째다. 큰아이는 어느덧 열 살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가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나면 후회가 밀려온다. 몇 번을 다짐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성격. 내가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오래 남는다는 걸 알면서도,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할 때가 있다. 함께 하루를 보내고, 이름을 부르고, 손을 잡고 안아주면서도 여전히 불안하다. 내가 전한 사랑이 충분했을까. 아이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까. 아버지로서의 나는 아직도 만들어지는 중이다. 서툴고, 느리고, 엉성하지만, 하루하루를 통해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래비스는 자리를 비운 채 돌아왔고,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사랑을 남겼다. 그의 모습은 후회를 품은 채 자신을 마주한 사람의 용기였다. 진심 어린 성찰이 있다면, 사람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용서를 구하진 않았지만, 감당할 준비를 마친 사람처럼 조용히 돌아왔다. 과거를 지운 채 돌아오려 했던 그의 모습은, 삶이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희망처럼 다가왔다. 그 고요한 여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파리, 텍사스]는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들, 용서를 바라면서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들, 그리고 자신을 마주하려는 한 사람의 조용한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자아를 돌아보는 일의 용기와, 자기 연민 속에서도 책임을 선택하는 모습, 그리고 아버지라는 자리가 지닌 무게가 느껴졌다. 반드시 완벽하지 않아도, 때로는 서툴고 조용한 방식으로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삶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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