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나 휴일을 앞둔 저녁이면, 아이들을 재워두고 조용히 맥주 한 캔을 딴다. 퇴근길, 시원한 호프집이나 가맥집이 눈에 들어올 때면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런 곳에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부터 그런 자리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지금은 집 안 거실이 가장 조용하고,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술자리다.
그날도 그랬다. 집 앞 슈퍼에서 사 온 만 원짜리 육회, 크레미 몇 개, 쥐포 과자, 그리고 맥주 두 캔. 애매하게 습하고 더운 초여름 밤이었다.
“에어컨 켤까?” 아내가 물었다.
“조금만 참자, 전기세 아깝잖아.”
결국 아무것도 켜지지 않은 거실에 나란히 앉아, 맥주를 따고 안주를 집어 들었다. 맥주 한 모금에 한 주의 피로가 조금씩 풀려갈 무렵, 아내가 피식 웃으며 선풍기를 바라봤다.
“오빠, 그거 기억나? 초밥.”
순간, 나도 웃음이 났다. 이 초밥은 먹는 초밥이 아니었다. 우리가 신혼 시절, 에어컨 없이 열대야를 견디던 나만의 방식이었다.
그때 우리는 가진 게 별로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시작한 결혼. 저축한 돈과 전세 대출로 구한 집은 역 근처 가장 저렴한 낡은 아파트였고, 혼수라 해봐야 가족들이 마련해 준 냉장고와 세탁기가 전부였다.
집은 꼭대기층이었다. 옥상에서 내려오는 열기에 한낮엔 숨이 막혔고, 밤에도 뜨거운 공기는 천장에 걸려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도 바람 한 점 없던 한여름.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만 돌렸고, 우리는 젖은 이불처럼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누웠다.
에어컨은 없었다. 일부러 안 산 것이었다. 몇 년 뒤 입주 예정이던 국민임대아파트에 기대를 걸고 있었고, 그곳에 가면 새 에어컨도 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조금만 참자.” 내가 말하면,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름, 나는 장난처럼 ‘초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팬티 한 장만 입고 선풍기 앞에 젖은 수건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 말했다. “여보, 나 참치초밥이야.” 빨간 수건이면 참치, 노란 수건이면 계란, 흰 수건이면 광어. 매일 바뀌는 수건 색깔에 따라 새로운 초밥이 완성됐고, 나는 그걸 이름 붙이며 웃었다. 아내는 피식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무더운 밤이 그렇게 조금씩 시원해졌다.
그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해 봄, 첫아이가 태어났고 마음이 달라졌다. 꼭대기층의 더위는 아이에게 무리였다. 바로 집 앞 마트로 달려가 에어컨을 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집에서 에어컨을 켠 여름이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우리는 국민임대 입주를 포기했다. 입주를 1년쯤 앞두고 근처에 매물로 나온 집을 보게 되었고, 우리는 결국 그리로 이사했다. 신축은 아니었지만, 우리 명의로 된 집이었다. 퇴직금까지 보태 어렵게 마련한 첫 집. 더 나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우리 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도감이 그 선택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아이는 둘이 되었고, 집은 넓어졌으며, 에어컨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닌 일상이 되었다. 지금 사는 집은 신혼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고, 때로는 이런 현실이 믿기지 않기도 한다.
그날도 우리는 맥주와 안주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크레미 한 점, 쥐포 한 입. 문득 초밥 이야기를 꺼낸 아내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덥고 힘들었어도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견딜 수 있었던 시간. 더위에 지쳤을 텐데도 나와 함께 웃어준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고맙기만 한 시절이다.
이제는 그때의 이야기가 안주보다 더 맛있다.
밖은 여전히 후텁지근하고, 아이들은 곤히 자고 있다. 에어컨을 켜자고 하자,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냥 선풍기만 켜자.”
그렇게 함께 버틴 시간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에어컨 없이 땀을 흘리던 시절도 있었고, 지푸라기 같은 유머로 여름을 이겨낸 밤도 있었다. 그 모든 날을 함께 견딘 사람과, 이제는 나란히 웃으며 앉아 있다.
아내는 나의 사랑이자 친구이자, 평생의 동료다.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지나온 사람과, 앞으로도 더 단단해지고 싶다.
젖은 수건을 맨살의 배 위에 올려놓고 선풍기 앞에 앉아 있으면, 그땐 나름 버틸 만했다. 그래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지금이라면 망설임 없이 에어컨을 고르겠지만, 그때 그 여름의 웃음만큼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