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타오르고, 촛불처럼 흔들리는 청춘.

비트 (1997)

by 바삭새우칩

퇴근길, 유튜브 쇼츠를 무심히 넘기다 화면이 멈췄다. [비트]의 명장면이었다. 정우성이 바이크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눈을 감은 채 질주하던 장면. 지금 봐도 여전히 멋지다. 요즘 어린 친구들에게는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중년들이 한때 뜨겁게 살고 싶었던 로망과 에너지가 바로 거기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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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를 친구들과 몇 번이나 돌려봤던 것 같다. 대사 하나하나 따라 하며, 거칠고도 멋진 삶이 그 안에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살고 싶다고, 진심으로. 지금 돌이켜보면 유치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절박하고 진지하게 그 영화를 사랑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장면 하나에 마음이 멈추는 건, 아마 그때의 나를 문득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 나도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물론 영화 속 정우성처럼 멋지게 달리는 상상을 했지만, 현실은 9시 뉴스에 나오는 폭주족 단속 장면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얼굴이 붉어지고, 그냥 지워버릴까 고민도 된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본다면, 아마 두들겨 패서라도 말리고 싶을 거다. 아무튼 그만큼 이 영화는 내 학창 시절 말미에 꽤 깊게 영향을 줬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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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트]는 1997년 김성수 감독이 연출하고 정우성, 고소영, 유오성이 주연한 작품이다. 거칠고 외로운 젊은 날의 방황과 우정을 다뤘으며, 바이크 질주 장면은 세대를 넘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요즘 나온 작품들을 보다 보면, 예전 영화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근래 본 영화 중엔 [변산]과 [시동]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불같이 터지는 감정보다는, 속으로 삭이는 마음들이 많고, 달리는 대신 잠시 멈추거나 돌아서는 인물들이 더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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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의 학수는 래퍼지만, 날이 선 인물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어긋나고 주저하는 사람이다. 무대 위에선 센 말을 뱉지만, 무대 아래에선 현실 앞에서 망설인다. 돌아간 고향에서도 반가움보단 어색함이 먼저고, 화려함보단 쓸쓸함이 많다.


[시동]의 태길도 비슷하다. 세상에 반항하지만, 그 반항은 투쟁이라기보단 일탈에 가깝다. 지하철과 고속버스를 타고 도망치듯 떠나지만, 그 끝엔 특별한 결말도 없고, 결국 다시 돌아와야 할 일상이 남아 있다.


이제 젊음은 더 이상 ‘모든 걸 걸고 달리는’ 상징이 아니다. 요란하게 터뜨리는 대신, 조용히 흔들리고 어딘가에 기대어 버티는 쪽에 가깝다.


재미있는 건, [비트]와 [태양은 없다]에서 정우성이 그런 날것의 시절을 대변했다면, [변산]과 [시동]에서는 박정민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점이다. 두 배우의 이미지와 결은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대의 젊음을 연기했다.



정우성은 눈빛 하나로 감정을 폭발시키며, 주먹을 쥐고 세상에 맞섰던 시절의 상징이었다. 반면 박정민은 혼잣말을 흘리듯 내뱉고, 어깨를 으쓱이며 마음을 드러내는 시대의 얼굴이다.


두 시기의 젊음은 모두 불안하고 외롭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이 그 불안을 겉으로 드러냈다면, 지금의 청춘은 그 마음을 조용히 안으로 삼킨다. 그 차이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지표일지도 모른다.


문득 궁금해진다. 다음 세대의 젊음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지금보다 더 조용할까, 아니면 다시 격렬해질까. 그 시절을 상징할 영화와 배우는 또 누가 될까. 언젠가 그들을 다시 이렇게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물론 몇 편의 영화만으로 한 시대를 모두 말할 순 없다. [비트]가 그 시절의 전부였던 것도 아니고, [변산]이나 [시동]이 지금 세대의 전형이라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화면에 담긴 정서의 결이 달라졌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분노는 안으로 숨고, 에너지는 흩어지며, 저항과 위로의 방식도 달라졌다. 그 변화는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저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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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불붙는 것만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무엇이든 세게 붙들고, 누구보다 앞서야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사랑이든, 우정이든, 혹은 단순한 반항이든.


[비트] 속 우빈처럼 가슴속 분노와 감정을 폭발시키고, [태양은 없다]처럼 내일은 없다는 듯 살아가는 걸 멋지다고 믿었다. 몸은 부서져도 마음은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그게 젊음의 방식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다르다. 격렬히 터뜨리기보다는 버티고, 외면하고, 때로는 침묵 속에 머무는 방식이 더 익숙하다. [변산]의 학수처럼 혼잣말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시동]의 태길처럼 도망쳤다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영화의 변화가 아니라, 시대의 얼굴이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말없이 세상을 노려보던 젊은 날의 나도 이젠 내 안에서 조용히 식어가고 있다.

다시 불붙을 수 있을까. 가끔은 정말 이글거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격렬함보다, 오래도록 따뜻함을 지켜내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펄펄 끓던 용광로 같진 않더라도, 마음속의 잔불 하나쯤은 꺼뜨리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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