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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마 Oct 30. 2022

한여름의 나

“그럼, 어떤 환경에 가면 행복할 것 같아요?” 상담 선생님의 한 마디. 말문이 턱 막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뒤로 2달 동안 상담을 가지 않았다. 도대체 그 대답에 대한 답을 알 수가 없어서. 요즘에도 가끔씩 지하 편집실로 들어가면서, “이 정도면 살만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일이 미친 듯이 바쁘지 않을 때,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않을 때, 일이 잠깐, 아주 잠깐 없을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정도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있는 기분인지. 


요즘 이를 닦고 나면, 아니면 너무 답답하면, 식당 밖에 있는 옥상에 간다. 가끔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빼고는 아무도 나가지 않는 공간. 특히 여름이 되니 아무도 없는 그곳에 나는 털썩 주저앉아 있는다.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서, 나무의 끝을 쳐다본다. 길고 곧은, 나무의 윗 모습과 하늘, 아파트를 응시한다. 거기 주저앉아서 울 때는 가끔. 주로 멍을 때린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표정으로, 당장 내일 세상이 망해도 잃을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거기서 한숨을 쉴 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살기 싫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 같다. 다 산 것 같은 표정으로 대피 구를 찾아 몸을 웅크린다. 잠시 웅크려 있다 보면 조금은 충전이 되는 느낌이다.  


이 두 순간의 지독한 격차가 나를 힘들게 한다. 원하는 환경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선배와 프로그램을 찾기가 어려운데,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냐고, 도대체 언제 만족할 것이냐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내 솔메이트 선배는 내가 심하게 가스 라이팅 당했다고 말한다. 어딜 가도 다 똑같을 거다, 여기에 있으니 그나마 워라벨이 있는 거다, 좋은 선배랑 좋은 프로그램 하고 있어서 누구도 부러울 게 없다. 다 나에게서 온 말이 아니라, 선배들이 나에게 주입한 말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내 특기는 독서, 영화, 편집…이 아니라 가스 라이팅 당하기인 것 같다.  


“나는”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문장을 나는 오래 묻어두었다. 나라는 사람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회적 페르소나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했다. 왜냐면 여러 번 괜찮지 않았지만, 그냥 그걸 당연하게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소리치는 내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옥상에만 머물다가 사라진다. 나는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인지 말이다. 정말 이 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에 있을까? 이 보다 더 좋은 조건이 있는 곳이 없을 텐데, 여기서도 행복하지 못한 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말만 반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숨을 참고 써본다. 단숨에. 잠깐은 괜찮겠지. 돈은 조금 더 많이 벌고 싶다. 시간 외 수당이 4천 원이 아닌 곳에 가고 싶다. 엄마 아빠를 원할 때 볼 수 있는 곳에 가고 싶다. 사랑, 우정, 뭐 이런 행복한 걸 그리고 싶다. 누가 뭘 잘못했는지 관심이 없다. 나 말고도 다른 저연차가 있어서, 혼자 짐을 다 지지 않아도 되는 곳에 가고 싶다. 틈만 나면 나에게 펭수같은 대박 프로그램을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선배들이 나에게 모든 짐을 떠넘기는 곳이 아닌 곳에 가고 싶다. 먼저 펭수를 만들어내는 선배에게 배우고 싶다. 내가 만든 걸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곧 망할 회사가 아닌 곳에 다니고 싶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으니 자기 자식은 못 오게 하는 회사. 그럼에도 저연차가 뭐든지 해내야만 한다는 이곳이 싫다. 그만 죽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 그냥 그만 다 그만하고 싶다.  


헐떡 대며 숨을 몰아쉰다. 숨을 참고 생각하니 이 정도다. 다시 숨을 크게 들 이마 쉰다. 아, 방심했다. 맞다, 이런 건 다른 곳 가도 다 똑같고, 여기만큼 좋은 곳은 없다.  


안 써도 되는 글을 썼다. 살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산다. 언젠가 일하면서 이게 사는 거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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