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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정신 Jul 30. 2020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PART 3 삶은 계속된다



 대학 때 혼자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자연히 그 친구의 관심사가 나의 관심사가 되었었다. 아무래도 우린 젊었으니까 음악과 영화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덕분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과 그의 영화를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아랍 영화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마침 전작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개봉해 좋은 반응을 일으켰고, 그 결과 후속작인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도 수월하게 개봉하여 (아마도 내 친구를 포함해) 한국에 감독의 팬층도 꽤 생겨났었다.                                                        


"우린 신혼을 빨리 시작하자고 했죠.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살아 있는 동안 인생을 즐기려고요. 다음에 지진이 오면 죽을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나요?"


영화 속, 지진에도 결혼을 미루지 않고 지진 다음 날에 혼인식을 올린 남성과의 대화에서 신랑의 대답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매 순간이 소중하다는 말은쉽게 하지만,실제 그런 마음으로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그런 사람은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후회할 일이 확 줄어 있을 텐데…….

재작년암 선고를 받고올해 전이를 겪으면서 내 경우는사람에 대한 후회가 많았었다.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버킷 리스트로 불리는 것)에 대한 회한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내 힘으로만이룰 수 없는 많은 일들은 아쉬웠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일. 대신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달린 일(드물지만 있다 ^^;)에는 회한이 별로 없었다. 내가 내 관심사 외에는 도통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인데다 만족의 역치도 낮아서 일 수도 있고, 어릴 적부터 멍 때리길 좋아했고 성실하게 지내다가도 한 번 게으름 부리면 마냥 일어나기 싫어하기도 하는스스로에 대한 주제 파악을미리 해 둔 점도 도움이 된 듯하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은 돈이 들어도 바로바로 해치우는습관을 들였거든. ㅎㅎㅎ그 덕택에 암 선고 받고 갑자기 세계일주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오래 못 만났지만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을 뿐. 

일단이틀정도 지나니 드디어 '사라진 종양'에 대한 현실감이퍼지고 있다.어제 글을 올린 폐암 환자 카페에는 역시나 방심하지 말라는 현실적인 조언들이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은 이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고 슬픈 일도 언젠간 그친다. 진단 후 1년간 써 내려간 나의 일기에는순간에 최선을다하라는 성현의 말씀에 대한공감이 여기저기나온다.   

         

암 환자가 되고나서 스피노자의 말이 확실히 이해가 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서 오늘 특별한 일을 할 사람도 있겠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은 하던 일을 마찬가지의 자세로 지속하는 것이다.
-2019.1.19

송담 스님의 법문을 틀어 놓았는데, 마침 “생과 사는 우리 소관이 아니니 다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낼 것.” 이 말씀이 쏙 들려왔다. 나는 요즘 정말 그렇게 살고 있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에 최선을 다하라는 송담 스님의 말씀을 따라수술을 앞두고도 오늘이렇게 구조 방정식 강의를 기어이 듣고 오지 않았는가! ㅎ 
-2019.2.22

삶이 계속되는 한 하루하루, 순간순간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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