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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정신 Aug 11. 2020

암에 걸리고 나서 후회한 일

PART 3 삶은 계속된다

보통은 암에 걸리면 지난 인생을 되돌아 보고 식생활을 바꾸고 삶에 대해서도 전지적 관조 시점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엔 그렇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처음 암이라는 걸 알던 날, CT 결과를 기다리는 대기실에선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그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흘러갔다. 수술 전후로 식생활도 신경 쓰게 되었고 이제 막 손에 잡힐 듯했던 내 인생의 성취들이 한순간에 우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며 부정하다 분노했고 결국 이 모든 일들을 수용하려 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은, 인간은 그리 간단치 않다. 수술 후 몸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듣자 40대 가장인 나란 환자는 곧바로 현실 모드로 돌아온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린다는 말로 경각심을 풀고, 갑자기 먹는 건강식은 먹기도 만들기도 힘들다는 이유로 소홀해졌다. 치료로 인해 정지해 버린 내 인생의 과제들에 다시 신경을 쓰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전이가 되어 이번에는 어머니마저 충격으로 입원하셔야 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학계의 사람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그동안 누가 암에 걸렸다고 하면 최소 10년은 '아픈 사람'으로 동료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는 경우를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친척과 친구들 생각도 덜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해도 수술방 앞에선 모두 헤어지고 만다는 것도 이미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입원 후 의식이 돌아오면서 나보다는 엄마를 챙겨야 하는 상황에 곧바로 던져져 나를 살필 경황이 없던 몇 달이 지나고 내가 후회한 것은 정작 다른 문제였다. 

 젊다고 안다고 자신하지 말고 실비 보험 외에 암보험도 들어놓고 가장이니까 홀로 남겨질지 모를 엄마에 대한 대비를 낭비라 생각 말고 종신 보험도 들어둘걸. 암 환자인 나는 이 순간, 우습게도 진작 투자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했다는 자책을 하고 있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돈을 벌었으면서도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란 근본 없는 믿음을 왜 굳게 지켰을까? 삶에서 건강과 가족이 가장 중요하고 그 둘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번에 전이로 생사를 오가면서 "아픈 데 돈까지 없으면 얼마나 서럽게!" 하시던 동료 교수님 말씀이 여러 번 떠올랐고, 폐암 치료를 받은 후에 아직 다섯 살인 딸을 위해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는 한 가장이 올린 글에 뒤늦게 공감했다.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차피 지금껏, 죽을 때까지 먹고만 살 정도 (사실 이것도 힘든 목표다) 있으면 된다는 삶의 태도가 키운 '돈에 무심한 원시인'이 쉽사리 개조되진 않겠지만 항암을 하면서 경제적인 면들도 생각하려고 한다. 가장이니까 생각해야만 한다. 


PS. 혹 죽을 때까지 먹고살고도 돈이 남는다면 기부할 곳들은 이미 리스트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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