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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정신 Aug 22. 2020

고냐 스톱이냐

질병 휴직을 하고 있으니 시간도 많고 그 날이 그 날 같을거란 생각을 하기 쉽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시간들에도 기복이 있다. 오늘은 즐겁게 다져놓던 마음 한 쪽이 무너진 날. 

 전에도 말했던가, 죽음도 두렵지만 살아가는 일도 겁나는 일이라고. 될 수 있으면 내 인생에 처음 얻어보는 이 휴식의 시간들만큼은 내 건강 회복을 위해 즐겁게 보내고 싶은데, 내가 무인도에 보내지지 않는 한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차단할 수는 없는 일. 더구나 나는 내 병을 주변에 거의 알리지 않았다.

 작년에 수술을 마치고 지방 모 치과 대학에 임용 공고가 났었다. 최종심까지 단독으로 올라간 내게 박사를 했던 대학의 주임 교수님이 "축하한다"라는 전화를 하셨다. 그때 나는 원하던 대학은 티오가 나오지 않아 지원조차 못해 보고 겨우 나온 그 대학의 공고에 응했던 것이다. 학계에 이름이라도 회자될 수 있도록 일단 지원은 해 보라는 원로 교수님 말씀도 떠올라 모교도 아니었고 교수 한 분은 이미 정년퇴직을 하셨고 다른 한 분은 개업을 해버리셔서 과에 교수가 한 명도 없는 그 학교에 서류를 넣었다. 내가 학계의 소문을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내 또래의 젊은 교수가 10년 넘게 재직하다 뛰쳐나온 것을 보면 근무 여건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일단 교수 자리는 지원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리다. 논문이 있다면 지원을 해 보는 수밖에. 

 결과적으로 최종심 전 날 학장에게 전화를 받았고 나는 공개 발표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의 학교에 복귀하려다 쓰러졌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늘 잊고 있던 이 기억을 소환하는 메일이 그 주임 교수님으로부터 왔다. 예전부터 교수는 계약서에 사인을 한 다음에야 된 것이라고 했는데, 너무 이른 축하를 주셨던 그분. 이번에 학회 회장단이 바뀌면서 학회지 편집 이사가 되셨다며 내게 논문 리뷰를 요청하셨다. 오랜만에 학회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그 사이 신규 임용된 교수도 눈에 띄고  학회가 재편된 모양이다. 나와 공동 연구를 하는 전임 편집 이사께서는 그저 이사로 물러나셨다. 치과대학에 있는 친구 말대로 나는 그냥 지금 있는 곳에서 적당히 스트레스받지 않게 일해야 하는 걸까?  내 모교는 전국에서 내 전공의 교수가 서울대 다음으로 많지만 모두 나와 10살 남짓 차이나는 서울대 출신 교수님들로 채워져 모교에 갈 수 있다 해도 오십 줄이 넘어서야 가능하다. 

 '역시 욕심일까?'   

 내 병을 굳이 알리지 않은 이유도, 완치되더라도 한 번 아픈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꽤 오래, 간혹 영원히 가는 경우를 학계에서 종종 봐왔기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교수의 꿈을 버리지 않았는데, 이제 정말 그만해야 하나? 비록 나도 힘들었지만 삼성을 나와 7년째 주부로 있는 고등학교 동창은 내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을 부러워했다. 만족해야 하는가? 지난 2년간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  

 "포기하고 주저앉으면 주저앉은 그 자리가 영원한 당신의 자리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꼭 이런 순간에 이런 글을 만나게 된다.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려는 마음이 무너져 포기해야 하나 할 때,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성악가 조수미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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