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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킵 고잉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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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의미 Mar 06. 2022

음파 음파


어떻게 자연스럽게 호흡했는지를 헷갈릴 때가 있다. 공기를 삼키지 않고도 어떻게 호흡했는지 골몰하다가 트림만 연거푸 하게 되는 그런 때가 말이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아 지는 순간. 무의식적인 반복을 의식적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순간.


일곱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러 YMCA를 찾았다. 아기 스포츠단 물개 반 소속이었다. 당연하게 물개처럼 헤엄치는 상상을 하며 첫 수업을 나갔다. 첫날 첫 시간 배운 건 숨을 잘 쉬는 방법이었다. 수영을 하려면 물속에서도 숨을 오래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 갑자기 어떻게 숨을 쉬고 있었던지 헷갈렸다. 물속에서 숨을 쉬는 방법은 지상에서 숨을 쉬는 방법과는 달리 지속적인 의식이 필요했다.


“숨을 음-할 때 코로 내뱉었다가 파! 할 때 잽싸게 먹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코로 물이 들어가지 않지.” 물개 반 선생님은 킥 판으로 몸을 겨우 띄운 여섯 명의 일곱 살들에 이렇게 말했다. 검은 전신 수영복을 입은 선생님은 정말로 한 마리의 물개 같았다. “우리는 물고기들처럼 아가미가 없으니까 숨을 최대한 오래 참고 유지할 수 있는 스킬을 배우는 거야. 그래야 물을 먹지 않고도 오래 물속에서 헤엄칠 수 있어.”


숨을 균형적으로 쉬지 않는 법은 생각할수록 어려워서 몸이 느낌을 기억할 수 있도록 아주 많은 반복이 필요했다. 들숨은 입으로, 날숨은 코로. 그러니까 음-은 코로. 파! 는 입으로.


수영장 물이 코를 타고 입으로 넘어올 때면 살이 따갑도록 아렸다. 수영장 소독 물이 유난히 더 독했다. 음파 음파를 두서없이 지상에서만 연습하다가 물속에서 까딱해서 반대로 수행하던 날엔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물이 기관지를 따갑게 때리며 들어오곤 했다. 캑캑 거리며 물을 뱉으면 콧물과 침이 뒤섞인 수영장 물이 쏟아져 나왔다. 소독약이 쓸고 간 목젖과 콧구멍은 물이 말라 가는 동안에도 찌릿찌릿하며 아팠다. 물을 또 먹기는 싫어서 성을 내면서도 숨 쉬는 방법을 배웠다. 자주 흠빠흠빠, 했다.


반면 몸에서 힘을 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유사했다. 킥 판 없이 처음부터 몸이 잘 뜬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빗자루를 한 번에 붙잡은 해리포터가 된 것 같았다. 영원히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숨 쉬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발을 차면서, 손을 저으면서 몸에 힘을 빼는 건 다른 감각이 필요했다. 물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몸이 굳어졌다. 몸을 움직이려면 힘을 줘야 하는데 힘을 주면 몸이 가라앉았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얼굴이 물속으로 점점 침몰했다. 물먹는 건 덤으로.


그럴수록 힘을 빼야 한다고 스승은 말했다. 겁이 나서 주는 힘을 모두 손과 발끝으로 보내라고. 몸은 떠다니는 배. 손, 발이 모터라고. 힘을 줘야 할 때 주고 잽싸게 빼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실망한 일곱 살들을 다독이곤 했다. “어려운 일이야. 아마 인어공주가 인간이 됐던 것만큼 어려운 일 일거야. 애리얼은 목소리를 잃었잖아. 그것만큼 답답할 거야.”

다행히 세상엔 다양한 영법이 있었고 숨을 계속 쉬면서도 물에 떠다닐 방법도 있었다. 배영을 배우고 나선 줄곧 물 위에선 누워있었다. 자유형을 하다가도 금세 몸을 뒤집고 하늘을 봤다. 물개 선생님이 레일 중간에서 몸을 뒤집으면 위험하다고 말해도 당장은 숨이 막혀 어쩔 수 없었다. 수영장 천장은 낡고, 바로 2층은 어른들의 관람석이었기에 자주 눈을 감았다. 보지 않고 손으로 가늠하며 손을 뻗고 발을 굴렀다. 앞은 캄캄한데 귀가 물에 잠기고 조용해지는 순간이 좋았다. 물결이 만져져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고요함이. 물론 자주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스물네 살 생일, 모로코 메르주가 수영장에서도 나는 여전히 호흡을 연습하고 있었다. 여행 동행인 세 명은 자유형은 물론이요, 배영, 평형, 접영을 다 하고도 잠영 자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 혼자 수영을 못한다고 슬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같이 뭐라도 해보려면 물에서 노는 법을 빨리 터득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묵혀 둔 호흡법을 꺼내왔다.

친구들 중, 졍이 나섰다. 영은 제주도 출신의 여자로 해녀의 후예처럼 수영을 잘했다. 단단하게 벌어진 졍의 어깨를 보니 괜히 더 긴장하게 되었다. 졍은 바짝 힘을 준 내 팔과 다리를 잡고는 적잖이 당황했다. 뜨지도,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허우적댔다.

힘을 준 다리는 너무 무겁다고, 졍은 양손으로 내 발목을 잡고는 투덜댔다. 손은 쫙 펴고, 얼굴은 귀까지만 담갔다가 들고, 발은 세게 차라고 말했다. 눈앞에선 사하라 모래 능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지만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숨은 계속 가빠졌다. 17년이 지났는데도 나아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억울했다. 걸음마를 배우다가 넘어져서는 그대로 눌러앉아버린 것 같았다.


숨이 모자라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진짜 죽는다는 생각은 잘하지 않는다. 비염으로 코가 막힌다고, 잠수 좀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나는 배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숨을 쉬지 못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서건 수영장에서 자주 그랬던 것처럼 누워서 떠다니면 될 것이었다.


양평군 용문면 광탄 천으로 놀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물개는 되지 못했지만, 소금쟁이나 모기 유충 정도는 되었다고 여겼다. 곤충은 얕보던 시절이었다. 아홉 살의 물개 반 졸업생은 호기롭게 튜브나 구명조끼는 동생들에게 다 넘겨주고 맨몸으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30분쯤이나 지났을까.

아빠의 증언으론, “수영금지/사고 발생 지점”이라 쓰인 곳에서 거품이 일었다. 물고기라기엔 너무 크고 둔탁한 거품이었다. 주위를 살피던 아빠는 내가 사라진 걸 알고 단숨에 사고 지점으로 헤엄쳤다. 아빠는 던졌고 삼촌은 받았다. 축 늘어진 몸은 삼촌 등에 업혀 물가에 놓였다. 인공호흡 몇 번으로 잠에서 깬 나는 한참 물을 토하고 또 토했다. 놀란 아빠는 등을 때리고 또 쓰다듬으면서 왜 거기까지 갔냐고 화를 냈다. 자기도 발이 닿지 않았다고.


물에 빠진지도 몰랐다. 그냥 누워있었다. 드문드문 구름이 보였고 구름 사이로 햇빛이 갈라졌다가 다시 붙었다가를 반복했다. 배가 고파져 몸을 뒤집었더니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몸에 힘을 들어갔다. 얼굴은 가라앉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몸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눈을 감고 코를 손으로 막았다. 발바닥이 강바닥에 닿기까진 10초가 걸렸다. 내려가고 올라오는 데 20초. 그렇게 20초를 4번 정도 반복했다. 머리가 아팠고 모든 게 아득해졌다. 숨소리가 멀어졌고 심장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그때쯤 돼서야 겨우, 내가 어쩌면 물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 밖으로 던져진 순간 “프하!” 하고 온 얼굴로 숨을 쉬었다. 눈앞은 보이지 않는데도 안간힘을 쓰면서 숨을 마시고 뱉고, 마셨다. 다시는 막히고 싶지 않은 구멍들을 한껏 열었다. 물고기가 팔딱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온몸의 무게가 실렸던 겨드랑이는 물 밖에 나와서도, 속에 있던 물을 다 게워내고 나서도 계속 아팠다. 손으로 감싼 어깨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굳은 사지 힘을 다시 빼는 건 힘을 주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이건 여타 상황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하라 직사광선으로 달궈졌던 수영장 물이 미지근해졌다. 물 밖에 있으면 바람에 이가 떨려 어쩔 수 없이 모두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메르주가 알리 네 집 수영장에 등불이 하나둘 켜졌다. 어둑한 조명 위로 밤이 짙게 깔려있었다. 전날 사막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아침부터 숙소에 무작정 들이닥친 네 여자를 친절히 받아 준 알리 씨였다. 우리가 놀고 싶다면 얼마든 더 있어도 된다며 수영장 조명을 낮춰주었다. 별바다는 잔뜩 어두운 사막을, 수영장을 감싸고 있었다.


해가 떠 있을 때 졍에게 배운 몇 가지 방법들로 나는 호흡을 기억하고 몸에 힘을 빼고 물 위를 떠다녔다. 겨우 뜰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자유형 영법을 배웠긴 했지만, 시작과 동시에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래도 여전히 물 위에 누워있을 순 있었다. 부동의 차렷 자세로 누워있기만 하는 친구에게 보다 못한 졍은, 누운 채로도 나아갈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팔다리로 원을 그렸다. 이어 벌리고 오므리고를 반복하며 따라 해 보라 말했다. 얼추 수영장을 누워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자 그녀가 말했다.


“그러다가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으면 말이지? 힘을 빼고 몸을 뒤집어서 또 원을 그리면서 팔다리를 저어. 개구리처럼. 그러면서 슬쩍 위치 확인을 하고는 또 후딱 누워. 어쨌든 핵심은 숨을 쉬는 거니까.”


넷이 물 위에 누워있었다. 어쨌든 나도 영법이라는 어떠한 방식을 구사했다. 여러 형태가 불규칙적으로 조합되어 있을 뿐. 엄연한 수영이었다. 어쭙잖게 사방으로 뻗던 팔은 정돈되어 나아갔다. 발장구도 규칙적이었다. 물결에 간격이 생겼다. 세 번째로 수영장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을 땐, 10m가 채 되지 않는 직사각형 공간이 작게도 느껴졌다.


그림 @박조개


별이 구름만큼 많았다. 한참 눈을 뜨고 있었다. 등불은 어둑하고 희미했다. 어슴푸레 시야가 가려졌다. 물에 빠지고 얼마간은 눈을 감을 때마다 일종의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곤 했다. 언제든 이대로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단 몇 초 만에 영혼이 빠져나갈 수도 있겠구나. 물이 발목까지만 와도 오줌이 마려운 것처럼 온몸을 떨었다. 한동안은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숨이 막히기 전까진 물개, 소금쟁이, 모기 유충, 구름, 물개 선생님이 된 나를 상상하곤 했다. 박력 있는 호흡과 거침없는 팔 근육과 모터 같은 발장구. 어느새 지평선으로 사라진 내가 보였다.


눈을 감았다. 다행히 아직도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숨도 잘 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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