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앙 May 10. 2020

코로나가 바꾼 근무 환경

feat. 타인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극강의 직장인이 되시길

1일 차. 긴 연휴가 끝난 바로 오전, 미국 업체와의 화상 온라인 미팅을 완전히 망쳤다

이번 화상미팅업체는 작년 한국에서 만난 업체였다. 얼굴은 한국인인데 전혀 한국말을 못 하는 걸 보니 교포 2,3세는 되는 것 같았다. 미국업체 대표였는데 당시 미국에서 우리 제품이 속한 업계 시장성이 크지 않아 관심 있는 다른 업체를 소개해준다는 말로 미팅을 마쳤었다. 1년여 시간이 지나 다시 화상 미팅 요청이 왔다. 해외에 못가니 화상 미팅으로 대체하기 시작했고 오늘이 그 첫 날이었다. 우리 상품 중 원래 오프라인 상품인데 코로나 사태로 ZOOM을 활용 가능하게끔 만든 상품이 있다.

화상 회의실이 딱 이렇게 생겼다

화상상담 또한 ZOOM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사실 ZOOM을 활용한 상품을 보여줄 계획이 없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아침 리더회의에서 결정됐다. 미팅이 진행될 때, 기존에 화상상담용 ZOOM 방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온라인 상품 시연용 ZOOM 방으로 이동해서 보여주는데, 양 쪽의 호환이 많은 딜레이가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가져간 노트북에 HDMI 선이 회의실 선과 맞지 않아 대안도 없었다. 1시간이나 잡혔던 온라인 미팅이 단 15분 내외로 끝났고 제대로 된 교류는 이뤄지지 못했다.


회의실의 인터넷 속도, 2개의 ZOOM 온라인 회의실을 사용한 점 등 시스템적 문제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팅이 진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세팅을 담당하는 실무자의 책임이었다. 이걸 망쳤다는 큰 실망감과 죄책감이 찾아왔다. 이제 대책과 대안을 세울 차례였다.


“물론, 이번 문제는 시스템적인 원인이 컸지만, 그동안 일을 아무리 잘 해냈다고 하더라도, 준비가 안됐다는 인상을 주는 건 안 되는 거야.”

상사는 항상 요구치가 높다

“00 씨가 여기 왔을 때는 5~6년 차 중간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언급했고 그걸 기대하는 거야. 물론 어려운 거 알아, 오늘 일은 멘붕이었다는 건 알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다른 주니어 팀원들에게도 보여줘야 하는 거고. 앞으로 업무에 대해서 타 팀원과의 협력을 이끄는 방법도 계속 고민해야 돼”


스스로 엄청난 죄책감과 실망감을 안고 있었던 차에 이를 명시화하는 말씀을 듣고 거기에 타 팀원들에 대한 협력과 리더십까지 언급하시니 감당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일단 맡겨진 업무를 제대로 하는 것부터 삐꺽 거렸으니, 다음 미션은 다음번 고민으로 넘겨야 했다. 다음번 미팅은 반드시 원활하게 이뤄내야겠다는 책임감이 압박했다.


2일 차. 테스트, 대안, 현장 시뮬레이션까지 진행했다

우선 기본적인 ZOOM 기능을 익숙하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깜깜한 밤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대상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를 명확히 인지하는 순간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ZOOM은 회의실 URL만 있으면 입장이 가능하고 제 3자가 호스트였던 미팅이었기 때문에 URL만 누르면 되겠지 생각했던 것이 안일했다. 호스트가 아니어도 직접 방도 만들어보고 여러 기능들을 눌러보고 익숙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도 문제없는 ZOOM을 이용한 강의 방법’, ‘ZOOM에서 문서 공유하기’’, ‘스피커가 안 나올 때’ 등 각 주제가 담긴 설명 영상을 보며 하나씩 따라가면서 확인했다.

모두가 퇴근한 뒤에도 혼자 남아 회의실에서 시뮬레이션을 마쳤다

호스트가 제3자인 미팅인데, 그 안에서 우리가 온라인 줌 활용 상품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인 것인지 TEST 하기 위해 제3자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테스트를 진행했다. 목소리가 잘 들리는지, 온라인에서 구동하는 프로그램 음성, 영상이 잘 보이지는 지, PPT가 잘 공유되는지 등을 모두 체크했다. 그리고 회사 내 화상 회의실에서 PC 화면이 나오지 않았던 문제와 해결을 현장에서 지원부서를 통해 확인하고 현장 시뮬레이션을 마쳤다. 개인적으로 모두 생소한 설비와 기능들이었지만, 실무자로서 이를 익혀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내일 있을 중국 업체와의 미팅은 기본적으로 설비나 시스템 때문에 달리 말하면 실무자가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더 이상 주기 싫었다.


3일 차. 중국 업체와의 성공적인 미팅과 남은 숙제

“00 씨 완전히 칼을 갈았구나!” 팀장님은 필자가 무엇을 말할 때마다 연신 이 말을 붙였다. '팀장님, 이게 안되면 저걸 쓰면 됩니다, 이 화상 회의실은 어제 잘 되는지 현장 시뮬레이션까지 마쳤습니다.' '화상 회의실을 만든 호스트와는 어제 계속 TEST를 했는데 혹시 오늘 아침에도 혹시 몰라 TEST 한번 더 보자고 부탁드려서 지금 들어와 계시거든요, 빨리 체크하겠습니다.'


“00 씨가 단 하나의 오점도 남기고 싶지 않구나!”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이날의 회의는 원활했다. 우리 회사의 온라인 Zoom을 활용한 상품 시연과 함께 많은 질의응답이 상호 간 이루어졌다. 우리의 제안까지 잘 전달됐다. 약 35분 간의 긴장감 넘치는 미팅이 끝난 후 “수고했어요.” 팀장님이 말씀하셨고, 성공리에 끝났다.(이날은 바이어가 30분 간격으로 타 업체와의 미팅 스케줄을 잡았기 때문에 우리와의 시간도 30분이었는데, 약간 초과 진행됐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3일 연속 코인 노래방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크게 내지르고 나서야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첫 번째 날은 예정되지 않았던 세션을 추가해 준비 시간이 부족했고, 발생 가능한 변수들에 대해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결론은 시스템 문제였지만 보스는 결국 실무자의 준비 부족 탓으로 여겼다. 그런 시련을 토로하듯이 노래를 불렀다. (가끔씩 ‘실무자의 날’이라고 해서 보스가 실무자의 일을 그대로 수행하는 날을 한 달에 1번 두었으면 좋겠다. 물론 ‘보스의 날’을 마찬가지로 두면 좋겠다) 두 번째 날은, 실무자로서 시스템을 숙지하고 유사시 대안을 마련했고 현장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난 날이었다. 그 외 변수는 이제 필자의 손에서 떠났으니, 내일 미팅에 대해 불안해 말자는 느낌으로 불렀다. (그래도 불안하고 초조했다) 세 번째 날에는 원활한 미팅을 끝내고 주말을 맞는 안도감으로 평소에 부르지 않은 노래들을 마음껏 불렀다.

아무렇게나 막 부르는 노래가 도움이 되었다, 지코의 '아무 노래'가 이렇게 좋을줄이야.

#외국어를 평가하는 사람들에 대해

특히 외국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또 외국어를 조금이라도 구사하는 사람들조차도 타인의 언어가 완벽한지 유창한지 등을 평가한다. 마지막 날 진행은 깔끔하고 완벽했다. 장소가 화상 회의실이고 3자 미팅이었고 각자의 스피커가 현지 인터넷 속도에 따라서 끊길 때도 있었다. 상대방이 필자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말을 느리고 하이톤 발성으로 통역했다. 이 때문에 우리 팀 대표님께서 답답하다 여기셨는지 점심 먹으면서 첨언하셨다. “2~3개월만 외국에 안 나가도 영어가 잘 안 나오더라고” 자신의 상황을 말씀하시면서 외국어를 더 잘 통역해보라는 말씀이셨다. 필자의 통역이 (온라인상의 상대를 위해 일부러 느리게 말했을 뿐 통역은 정확했다) 만족스럽지 않으셨던 거다. 그렇다, 모든 시스템과 통역을 완벽히 해도 해당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상사로부터는 또 다른 평가가 나온다. 외국어 구사자들의 언어를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자가 이전 직장 실장님께 외국어로 소통을 할 때 상사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외국어가 더 잘 안 나온다고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직원 능력을 믿는다면, 의심 대신 믿음의 말을 던저라. "수고했네, 잘했어."

꼭 외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평가를 하는 법이지. 언어는 소통이야. 설령 상사일지라도, 평가의 시선을 절대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 좀 망치면 어떠니, 한국말도 마찬가지인 것을.”


서울대 박사 출신에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시는 엘리트 실장님이셨다. 외국어 구사자에겐 두고두고 위안과 동기부여가 되는 말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평가는 그만하자. 당신은 얼마나 완벽히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한국어도 마찬가지이듯 언어란 컨디션에 따라 잘 구사가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같은 한국어도 상대방이 못 알아듣게 어렵게 설명하거나 장황하게 구사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어인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당최 모르는 경우도 많다. 비즈니스 미팅에서는 그저 말하는 의도를 깔끔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면 된다.


그리하여, 남은 과제는 화상 바이어 미팅에서 느리고 크게 말하면서도 상사의 눈에도 유창하게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클라이언트는 두 명이었다. 외부 클라이언트와 내부 클라이언트! 직장인으로서 숙명이랄까. 코로나가 실무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다채롭다. 모든 해외영업 실무자와 코로나로 인해 다채로운 추가 스킬을 키워야 하는 모든 직장인들이 상사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런 극강의 직장인이 되시기를. 


#코로나 #화상회의 #해외 미팅 #3자 회의 #통역 #외국어 #PC #시스템

매거진의 이전글 여운이 가시기 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