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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May 20. 2020

같은 야근, 다른 느낌

feat. 성장하는 산뜻한 기분

#수면 아래로 발버둥 치는 오리

직장생활 6년 차다. 그동안 야근을 무수히 해왔다. 처음 2년의 야근은 타들어 가는 촛불과 같았다. 촛농도 남지 않는 초. 회색 빛의 냉정한 시청 건물 안에서 인간 자아는 없고 소모만 되는 느낌이었다. 다음 이직한 회사에서 3년 동안은 필자에게 맞지 않는 촌스러운 옷을 억지로 입은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다양한 리더의 유형을 접했다.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에 대한 사례들이 쌓여 갔다. 필자가 하고 싶은 일 주위를 맴도는 느낌이었다. 보고 배울 사람이 없어 찾아내고 개척했다. 기획안, 제안서, 가격표, 브로슈어 및 홍보 영상제작, 인터뷰 통계, 시장조사 보고서, 전략 보고서, 계약금 수급절차 수립 등등 많은 업무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와 필적하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여유 있게 헤엄치는데 실상은 수면 아래로 엄청나게 발길질을 해대는 오리 같았다.

이제 막 6개월 차로 접어든 새로운 팀 안에서도 야근을 한다. 예전과 같이 지친다. 저녁 9시 반, 집 근처 역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을 지나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무언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다.


#다양한 도전과 편안한 안정감 사이에서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배울 것이 많다. 오늘 아침 문 밖을 나서면서 들었던 생각은 ‘배울 수 있는 리더(그룹장님과 팀장님) 밑에서 일할 수 있어 재미있다, 행복하다’라는 생각이었다. 출근하자마자 필자의 금주 업무 리스트엔 없었던 하반기 전략 실적 보고서 회의에 투입됐다. CEO 보고 문서작성 회의였다. 그룹장님의 생각을 PPT에 적는다. 기존 문서를 거의 다 갈아엎었다. 문자를 지우고 새로 쓴다. 지난 6개월 간의 해외법인 실적과 다음 하반기 계획이 들어있다. 한 사업부의 대표가 생각하는 그림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PPT를 작성하면서 기존에 쌓여 있는 업무를 걱정하는 자아와 이 회의도 충분히 재밌다는 자아가 서로 옥신각신한다.

#하루를 구성하는 다양한 업무들

오후에는 점심 후 미팅 1개, 늦은 미팅 1개가 있었다. 두 개 다 미팅 후 별도로 팔로업 문서를 작성하고 상대에 넘겨야 하는 건들이었다. 거기에 월요일 만난 해외업체에 신규 가격을 오퍼 하는 메일을 보내야 했다. 바이어가 메신저로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답을 해준다. 오늘은 늦은 시각 사무실을 나왔다.  


#성장할 수 있는 지점

새로운 팀장님은 성장할 수 있는 지점을 알려 주신다. ‘제안서를 작성할 때는 꼭 그룹장님의 로직을 따라가지 않아도 돼. 스스로 어떤 논리력을 가지고 상대를 설득할 것인지 설계하는 힘을 길러야 해.’라든가, ‘중간 관리자가 될수록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업무 협조를 요청하고, 누구와 협업해서 진행할 것인지 스스로 협업을 조직화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해’라는 식의 피드백이었다. 무수하고도 자잘한 업무들 사이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할지 알게 된다. NEXT 성장 동력이 된다. 지금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음 목표를 제시해주는 리더가 있어 다행이다.

거시적으로 업무를 바라보고 어느 지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아는 것은 맡은 실무 만을 잘 해내는 것의 다음 단계다

#성장하는 느낌 돼

판단력, 논리력, 협상력을 갖춘 리더 밑에서 일하니 업무가 다양해서 도전 과제가 많다. 이전처럼 앞이 깜깜한 채로 허덕이는 게 아니라 방향성을 가지고 달리는 기분이다. 정시 퇴근을 하는게 베스트지만, 어제보다 한 걸음쯤 더 나아가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들이다. 성장하는 느낌이 행복감을 준다. 의미 있는 시간이어서, 헛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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