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앙 Jun 28. 2020

그대의 볼품없는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이해해요

외로운 순간들이죠, 툴루즈 로트렉이 말했다

20년 6월 어느날 바라본 하늘

구름이 뭉개 뭉개 피었다. 일주일의 노고를 풀어주는 기분이었다. 일주일을 꽉 차게 살았다. 심지어 노는 것도 힘들게 놀았다. 아침부터 나가서 기차 타고 서울에서 남해 목포까지 내려갔다가 당일치기로 밤에 올라왔다. 다음 날은 여독을 푸려고 연차를 냈건만, 유튜브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강의를 들으러, 왕복 2시간 반이 넘는 전철여행을 했다.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행 후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강의를 들으러 가겠다고 했던 야심 찼던 아침 필자모습이 떠올라 혀를 끌끌 찼다. 나란 사람은 참 한결같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들로 꽉 채운 일상을 살아야 직성에 풀리는 성격.

M50 상해 창의구

 2010년도에 상해 세계 박람회를 보러 갔을 때요, 북경에서 상해로 기차 타고 가서 제일 먼저 박람회가 아니라, 상해 창의구 전시장들을 쭉 둘러봤어요. 겉은 더없이 철물구조로 공장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작품들이 있었어요. 여백이 많아 꽃 한 송이 그려진 작품조차 아름다웠죠. 예쁘고 멋진 그림들을 모두 촬영해두었어요. 그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줄곧 제 취향은 예쁜 ‘무엇’에 있었어요. 일반 사물을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이 결정되는 방식이 재미있었어요. 작품의 구도, 채색, 명도, 질감, 재료 등이요.”

“이전에 관람했던 ‘알퐁스 무하’ 전시회에서는, 여성을 표현하는 우아함과 예쁨의 궁극을 보는 것 같았어요. ‘흰 도화지에 조금의 여백도 두지 않겠다!’하는 섬세한 정교함까지 있어서 작품 하나씩 감상하는데 오래 걸렸어요. 전시 관람을 끝내고는 아예 알퐁스 무하 달력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열심히 찾아서 구매했어요. 책장에 두고두고 그 우아함을 느끼고 싶었죠, 지금 제 책장 위에 있는데, 달력에 향수를 뿌린 듯 매월 다른 그림마다 다른 향기가 나는 것 같아요.”


언니가 말했다. “나는 반대예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애환이나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 좋아요. 글로벌 사업가님도 언젠간 좀 더 구체적인 미술 취향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예쁘고 멋진 작품을 선호했다지만 장르를 가리진 않았다. 미술적 취향이 섬세하게 확고해질 때 즈음이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Art School에 가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우선은 수많은 작품들을 접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대의 볼품없는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이해해요. 문득 외로운 순간들 말이죠.

루즈 로트렉은 무대 밖 일상을 그렸다. 우리는 특별한 날보다, 특별하지 않는 날들을 더 많이 산다. 일상은 하찮고 볼품없기까지 하다.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일상이 스케줄로 꽉 차있다. 꼭 가족과 연인과 친구랑 놀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이니까 땡땡이치고 싶고 놀고 싶고 쉬고 싶다. 일주일을 살 때 문득 어느 하루는, 아니 이틀은,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목표를 향한 길은 그 누가 대신해서 가는 것이 아닌, 오롯이 혼자 힘으로 뚜벅뚜벅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이렇게 하면 결과는 좋을까’ 의심이 들 때도 있다. 매 순간 그런 의문을 참으면서도 노력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슬프든 우울하든 외롭든 고독하든 세상은 무심히 잘 굴러간다.

머리 묶는 여자, 누워 있는 여자

루즈 로트렉이 표현한 무희의 일상, 침대 곁에서 머리를 묶는 모습,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 누워있는 모습 등 보잘것없는 일상 속 사람들의 표정과 화려하지 않은 민낯의 모습들이 왠지 필자와 비슷했다. 외부에서 보이는, 정장을 입고 각 잡고 사회생활할 때의 모습과 그 밑에서 고군분투하는 일상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고독과 외로움을 그려냈고 그림 속 사람들의 눈빛을 읽었을 때 동질감을 느꼈다. 100년 전 무대 아래에서 느끼는 그 고독을, 그 감정을 현대인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으니까. 눈부신 조명 아래서 돋보이는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화려한 직업과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는 그네들의 일상을 보면서 무대 위에서  PT를 해야 하는 필자의 직업과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일상이 오버랩되며 위안이 됐다.


#그가 현대에서 나를 마주한다면, 무엇만을 남길까

그의 작품 가장 중요한 '무엇'을 제외한 모든 것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삭제하고 덜어냈다. 100년 전 그의 공연 포스터들이 현대 상업광고에 영감을 준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일종의 나이트클럽인 물랑루즈에서 그는 공연 포스터 화가로 유명했다. 사람을 부각할 때 까만 장갑이나 빨간 목도리 등 딱 한 가지 포인트만 남기고 그렸다. 그 과감성과 단순함에 혀를 내둘렀다. 하나의 지면을 빠짐없이 꽉 채우는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알퐁스 무하와 정반대의 화풍이었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가 나와 조우한다면, 무엇만을 남기고 표현해줄까. 전시회를 관람하고 이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스스로한테 질문해봐도 쉽지 않다. 그는 대중들의 이목과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 한 가지를 탁월하게 발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영화 <물랑루즈>의 주인공, 무희 Jane Avril의 포스터

극강의 단순함을 통해 핵심만 보여주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정말 단순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 '단번에 이루려고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하나하나 중요한 것들을 위주로 하며 버릴 것은 버리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툴즈 로트렉이 작품을 통해 말을 건넸다.


“저는 그 어떤 작품도 우연히 나에게 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연히 마주한 문구, 우연히 마주한 미술작품 이런 건 없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현재의 나한테 필요한 무엇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우연을 가장한 신이 나를 위해 준비해놓은 선물 같은 거죠. 


언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은 나에게도 와 닿네요. 우리 다음에도 좋은 전시 보러 가요.” 왠지 우리는, 좋은 문화예술 메이트가 될 것 같았다.


본 전시회를 보고 난 뒤에 두 가지 바람이 생겼다.

1.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물랑루즈

영화 물랑루즈여주인공은 로트렉 작품에서 제인 에이브릴을 모티브로 삼았다.

2.  가보고 싶은 곳: 남부 프랑스 RB

툴루즈 로트렉 그림은 국보급이라 반출이 어렵다고 한다. 더 많은 그의 작품을 보고 싶다.


*전시정보

전시회: <툴루즈 로트렉> 전
기간: 2020.06.06. (토) ~2020.09.13. (일)

시간: 10:00 ~ 19:00

장소: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요금일반 : 15,000원
청소년(만 13세~18세) : 12,000원
어린이(36개월~만 12세) : 10,000원


매거진의 이전글 라이언의 간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