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갓 졸업한 뒤 스물일곱 즈음에 곧 취직했다. 처음 취직한 시청역 근처 회사에 근무하면서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했다. 상사가 원하는 것과 회사가 원하는 것을 위해 달리는 삶 속에 '포커페이스'를 해야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았다. 개인사는 풀어놓지 않았다. 이 회사에 취직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에게 시시콜콜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야근이 많았다. 8-10시까지 일하고 들어오면 침대에 쓰러져 잤고 다시 아침을 맞길 반복했다. 주말에 잠깐 찾아오는 자유 속에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상사를 보면 다음 필자의 미래가 보였다. 이렇게 회사, 집을 왕복하는 동안 감정은 메말라갔다. 스스로 감정도 돌아다볼 여지도 나지 않았다. 세상은 필자의 속도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희, 노, 애, 락 없이 지내오면서 억지로 감추고 드러내지 못한 감정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동안 체력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갔다. 그 시절 연애도 무감정에 가까웠다. 이성친구는 조금 더 친한 친구였다. 상처도 집착도 흔한 구속도 없었다. 헤어지는 것도 쉬웠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서른 즈음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퇴근 시간 후 개인 시간이 생겼다. 그 뒤로 감정이 차차 회복되어 간 것 같다. 조금씩 느낌과 체험에 솔직해졌다. 짧은 광고나 에피소드, 노래 하나를 들어도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졌다. 단 한순간에도 감동을 느끼거나 슬픔을 느끼면,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한없이 차갑고 메말랐던 필자가 변했다는 걸 느꼈다. 감정에 솔직해지니 한결 편해졌고 가짜 인생이 아니라 비로소 진짜를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곧 12월이다. 한 해 동안 아등바등 잘 살아왔다. 여러 관계 속에서 많은 감사함을 느끼고 배려받고 사랑받기도 했으며 크고 작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혹자는 사랑함으로써 상처 받길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건만 그 말을 고스란히 체험하는 오늘들을 살며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고(사랑할수록 힘들게 여겨지는 것이 정상은 아닌 거 같긴 하다),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순간들을 지나왔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많이 애써왔고, 채워지지 않는 바람들로 허망한 외로움을 견뎌왔다.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기 때문에 힘든 순간들을 겪으면서 어느 순간엔 괜찮다가 어느 순간엔 다시 괴롭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마주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 가수가 부른 다음 노래가 가슴을 후벼 팠다. 모든 감정이 다 자연스럽고 괜찮다고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느낌이었다. 필자한테 안겨준 뭔지 모를 안도감과 같이 이 곡이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될까 공유하고 싶다. 연말을 맞는 독자들에게 조그만 위안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