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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프로 Dec 09. 2020

밀린 일기를 쓰던 날

어느 겨울

사랑하니까 겪는 슬프고 시린 마음을 한 달여간 겪었다. 두통이 찾아왔다. 심한 두통으로 새벽 네시 반에 깼을 때는 목이 칼칼함도 느껴졌다. 감기에 걸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날, 여전히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안을 달렸다. 콧물이 주룩 흘러내렸을 때, 올해 처음 감기에 걸렸구나 했다.  

마음고생을 할 땐 도리어 체력은 강했다. 정신이라도 똑바로 차리고 상황에 직면해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연인과 새벽 두 시까지 통화를 하는 날도, 얼굴을 보며 밤늦은 열한 시 반까지 얘기하는 날도 연속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연속으로 하는 날들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때즘, 그 동안 앓아왔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몸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이보게, 나 좀 내버려 두오.'


감기약을 먹고 나선 대낮에도 계속 감기는 눈을 참을 수 없어 퇴근하고 나면 일찍 잠들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씻고 쓰러져 자리에 누우면 쉬이 잠이 들었다. 그렇게 삼일을 보냈다. 집에 오면 그저 씻고, 잠에 드는 일만 했다.


지난 한 달여간은 매일 쓰던 일기도 영어도 독서도 모두 정지다. 코로나로 인해 마치 세상이 정지된 것처럼, 연인과의 관계가 중요했기에 내 자신리듬과 속도는 멈추었다. 해결해야만 하는것들을 마주해 나가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밀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하나씩 일기를 채워나갔던 것처럼 복기할 순 없지만 다행히도 매일의 이벤트 하나 정도는 생각났다. 조금씩 삶의 리듬과 속도가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감기로 인해 지친 몸을 억지로라도 쉬어주는 것처럼 하나씩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다시 살아간다. 아파왔던 날들이 헛되지 않기를. 그와의 관계가 영원하기를 믿고 싶은 겨울을 지내고 있다.


https://youtu.be/hxYBkciF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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