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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프로 Aug 20. 2021

하려던 계획이 좀 틀어지면 뭐 어때

feat. 하늘 수집가

일하다 동료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반기도 4개월이면 끝나요."

정말 놀랐다. 내년이면 서른다섯이다. 숫자가 현실 같지 않다, 내가 곧 서른다섯이라니!

부모님께 말했다,

"내년엔 저도 독립할게요. 서른다섯까지 독립 안 하고 붙어있는 건 좀 그렇잖아요."


살아보니까 생각하던 대로 흘러가긴 하는데 대체적으로 마음의 속도와 현실의 속도는 다르다. 현실은 마음속 계획과 그림을 서서히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업부는 코로나 19가 심해지자 영업이 더 잘되고 바빠졌다. 작년에 재생산 지수에 따른 감염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새로운 사업기획을 작성했던 부분이 올해 빛을 발하고 있다. 회사는 일주일에 2일만 회사에 나오는 방침을 쓰고 있다. 덕분에 늘어난 시간에 잠을 더 자고 있다. 생활이 더 안정됐다. 기분도 늘 좋고 일은 집중이 더 잘 된다. 어느 때고 울리는 상사의 전화에도 딱히 기분이 어그러지지 않을 만큼 흘러가는 대로 '그러려니' 그렇게 살고 있다.

다가오는 9월에는 여러 일정들이 픽스되어있다. 사업부 일정에는 전시회가 있고 해외 상담회는 3개나 신청해둬서 꽤 많은 바이어들과 매칭 될 것 같다. 드디어 40대 이하도 백신 맞을 기회를 정부는 주었고, 9월 초에 맞게 된다. 건강관리를 1순위로 하는 것이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됐다. 하고 싶은 게 많아도 욕심 없이 그냥 잠을 자버린다. 지난 1년 동안 잠을 너무 못 잤다. 전 남 생활패턴에 맞춰져 5시간 이하로 잠을 잤던 내 생체리듬도 원상 복귀돼 회복되어가고 있. 망가졌던 것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 망아지 같던 미친 시간들이 후회스러울 만큼,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싶다.

나는 고요를 사랑한다. 재택을 하면 잡음이 좀 줄어든다. 단순하게 하나씩 집중할 수 있다. 시끄러운 단톡방도 하나씩 나와버렸다. 각종 광고들은 바로바로 차단했다. 이렇게 시끄러운 잡음을 하나씩 꺼버렸다. 가장 중요한 것들만 남도록. 올해에 세웠던 계획도 어찌하여 하나씩 이루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유투버이자 작가님이 라디오 음성을 메시지로 보냈다. 그는 자신의 안부를 물으면서 독자의 안부도 물었다. 좋아하는 유투버의 음성을 듣는 것도 힐링이었다.

손톱 같은 달이 이쁘다, 21년의 여름밤


금요일이다. 한주를 성실하게 꽉 차고 알차게 보내고 나니 좀 쉬고 싶다. 하루 종일 재택 하느라 점심식사 후 산책을 제외하곤 밖을 나오지 않았다. 저녁으로 삼계탕을 영양 보충하고, 20대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흰 티에 청 숏 펜츠를 입고 곧 지나갈 여름밤을 거닌다. 맨살을 스쳐가는 간지러운 바람이 좋다. 서른넷의 여름,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고 감사하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시간, 건강, 예쁜 걸 누릴 수 있는 여유가. 모르면 물어볼 수 있는 롤모델이 있음을, 멋진 동료가 있음을, 먼저 걸어간 선배가 있음을. 반대로 내게 의지해서 진지하게 업무나 커리어를 상담 요청하는 분들이 계심을, 강연을 열어달라고 요청해주시는 분들이 계심에 감사하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하늘이 이뻤다. 찍고 보니 올여름 수집한 하늘만 수십 장이다. 나중에 하늘 사진 수집가로 전시회나 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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