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여간 감정을 억눌러오면서 살았다. 복잡한 건 생각할 수 없었다.생각할 시간이 진작 있었더라면 애매한 관계를 더 빨리 끝낼 수도 있었을 거다.
좋은 것들만 생각하고 살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그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만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조금 생각의 틈이 생겨서 생각해보니,
그 사람과 관계에 충실해서 온전히 생각하고 감정을 느꼈더라면 아주 진작에 그만두었을 관계였을 거다.
그런데 그건 그냥 타이밍이라고 해두자,
만나야 했을 타이밍에 만났고
헤어졌어야 했을 타이밍에 헤어졌다고.
그럴 겨를이 없었다는 건 당신을 조금만 더 알아갔어야 했던 것임을 그리고 그 후에 진짜 아니었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당신 곁에 있을 때 불안했다는 사실과당신 곁에 있을 때 나 자신이 온전히 되는 것이 힘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신과 만나려면 감추어야 했다.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할 땐 그게 얼마 큼이든 두려웠다. 그래서 애써 당신으로부터 느끼는 불안함과 긴장과 곧 일어날 것만 같은 갈등들을 꽁꽁 감춰야 했다.
그래서 나답게 힘차게 부딪쳐 보지 못했다,
당신을 만나면서 여러 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아닌데."
"이렇게 하는 건 내가 아닌데."
이런 일들은 너무 사적이어서 아무에게나 털어놓을 수 없을 때 차라리 브런치처럼 아예 모르는 제삼자가 제일 편하다.내 속에는 온갖 일을 다 일러바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게 무엇이든 다 털어놓고 싶었다.
미국 텍사스의 영어 선생님과 밤 11시에 화상으로 만났다. 며칠 전 일부터 이야기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갑자기 추워진 오후에 집을 나섰다고.손 주머니 핫팩을 넣고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시험을 보러 나갔다고.그날은 긴장한 탓에 카페인 5 샷에 박카스라는 에너지 드링크로 버텼다고.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딱 7년 전에 첫 번째 직장 인터뷰를 보러 갔던 그곳에 시험장이 있었다고. 합격해서 매일 출퇴근하던 7년 전 그 자리에."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길, 첫 직장 상사였던 대리님한테 전화를 걸어 저녁은 드셨는지
퇴근시간이 맞으면 밥 먹자고 했는데, 하필 그날 재택근무셨다고. 대신 베스트 프랜드와 전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했다고집에 돌아와서는 그날은 한숨도 못 잤다고. 밤을 지새웠다고."
미국 텍사스 그는 이렇게 말했다.
"I knew how hard you prepare for the test, You did great."사실 아직은 아무도 이런 얘길 해준 적이 없었다.그 말을 듣길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괜스레 울컥했다.
"자꾸 그가 생각나.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밤에 자기 전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니까 좀lonely 하기도 해."
라고 말했다.
"It's just a little bit lonely.
It's not because of him"
문득 생각났다. 첫 직장에서 외국 동료가 쪽지 하나를 내 자리에 살며시 두고 퇴근했다. 접어진 쪽지 안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