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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Feb 24. 2022

로또 말고 코로나 당첨

당첨번호 17만1천5백번입니다

일요일 오후, 으슬으슬 추운 느낌이 들었다. 이불속에 쏙 들어가서 낮잠을 자는 모양새로 누워있다 밖에서 외할머니의 앓는 소리에 일어나 따뜻한 차 한잔을 내어드렸다. 한기가 느껴지는 컨디션이 근 한 달간 고기를 안 먹어줘서 기운이 없다보다 했다. 큰 마음을 먹고 스테이크 고기를 사다가 프라이팬에 큼직하게 구워 야채와 함께 먹었다. 먹고 나니 어째 배가 많이 부른 것이 금세 잠이 와 8시간~10시간을 제대로 숙면한 것 같았다. 기분 좋은 꿈도 꾸었다.


월요일 아침, 손발이 차고 온몸이 쑤시는 게 몸살감기인가 싶었다.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제발 음성으로 나오게 해 주세요, 약만 받아오게 해 주세요'라는 바람을 되뇌었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처방전을 받아, 약을 지어왔다. 이대로 근무는 무리인 것 같아 급하게 오후 반차를 썼다. 그리곤 약을 먹지 않고 버텼다. 하루 종일 열이 났다. 속은 매스껍고 울렁거렸다. 그래서 아무것도 먹질 못하다, 약을 안 먹곤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늦은 오후 5시가 다 될 때 즈음 처음 약을 복용했다. 그때 알게 됐다. 어제저녁 먹은 고기가 제대로 얹혔구나. 열 손가락과 발가락을 땄다. 그때서야 혈액순환이 되고 명치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체한 게 내려가면 열이 내리고 몸살기도 나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이 모습을 보며 '어썸프로가 무럭무럭 자라기 위해서 이렇게 아픈 거로구나'했다. 할머니 눈엔 손녀가 아직 청소년기인가 보다. '오늘 하루만 잘 버티면, 내일은 금세 나아있겠지'하는 생각으로 잠들었다.


화요일 아침, 오후에 회사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을 거란 얘기를 들었다. 어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은 지라 좀 어지럽긴 해도 열이 내렸으니 한결 나았다.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해서 나갔는데, 정상 컨디션은 아니었다. 전철을 타고 상사에게 증상을 말하면서 10시 즈음 도착할 것 같다고 했다. 상사는 오늘까진 재택 하고 회복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철을 탔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콧물이 나고 목이 아픈 증상이 추가되어 약국에 들려 증상을 말하니 코로나 증상이라고 했다.

"신속항원은 음성 나왔어요"

"글쎄, 음성 나오더라고요"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중요한 자료 정리를 마치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신속항원검사를 접수하면서, 음성이 나오면 소견서를 부탁한다고 했다. 정말 놀랐다. 당연히, 음성일 줄 알았는데, 양성이니 바로 PCR 검사를 받으라고 권유했다.


전날 아예 못먹어서 허기가 졌는지 점심을 두그릇 먹고 집 근처 선별 검사소로 향했다. PCR 줄이 별도로 있는데도 사람들 줄이 대단히 길었다. 놀이공원 후름나이드 줄보다 두세 배는 길었다. '음성 나오게 해 주세요'와 같은 생각도 없었. 양성이면 격리 되는 거고, 아니면 빨리 감기 나으면 되는 거고. 회사에서도 확진자 이슈로 PCR 검사를 이미 여러 차례 진행했었던 터라 이번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검사 해프닝'정도로 생각했다.

이날 밤, 오한이 들기 시작했고 열이 올랐다. 잠에 아예 못 들 줄 알았다.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고 한 시간쯤 지나자 한기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요일 아침 새벽, 말그대로 일어나자마자 폰을 봤는데 1초도 안돼서 코로나 당첨 문자가 다. 새벽 배송 시스템인가. 이럴 수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동안 2년 반이 넘게 코로나 상황을 겪어오며 대중교통에 노출을 수만 번을 했기에, 어느 순간은 걸리지 않은 게 신기했을 정도다. 게다가 이번 주 주말은 꼼작 않고 외출도 하지 않았기에 도저히 어디서 걸렸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회사에선 지원부서에서 각기 다른 3명이 나에게 증상과 경위에 대해서 물었다. 그중 한 분은 코로나 TFT에 계신 분인데 본격 위로 전담이셨는지 '넷플릭스는 구독하고 계시는지', '가족들은 괜찮으신지', '오미크론은 3~4일이면 나을 거다' 등등이 폰 너머로 들려왔고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회사 그룹웨어 게시판에는 매일같이 3~5,6명 사내 확진자에 대한 공지가 떴다. 매일 공지를 보면서 '어머나~어떻게 이렇게 지'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네다섯명중에 내 이름이 있었다. 그룹웨어 공지를 보고 개인 톡이 울리기 시작했다. 다들 "몸은 괜찮아?"라고 물었다. 이쯤 되면 기계적으로 증상을 말해준다. 그리고 덧붙였다, 더 단디 조심해서 웬만하면 걸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날의 코로나 당첨자 수는 하루동안17만명이 넘었다.


목요일 새벽 4시쯤 오한이 들어서 깼다. 잠옷을 한 겹씩 더 겹쳐 입었다. 타이레놀을 한 알 먹고 잠을 청했다. 재택근무라 해도 9시가 출근 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8시 30분에 가까스로 깼다. 정신을 차리고 일을 했다. 어제보다는 '어지럼증'이 덜해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동안 경황이 없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제대로 집중을 못했던 몫까지 다 해치웠다. 마감기한보다 하루 일찍 제출할 수 있었다.


체험과 느낌이 진실이라고 했던가. 누군가 글로 말로 전한다한들 그게 나의 진실일 수 없다. 갑작스럽게 오한이 들어 몸서리치게 추웠던 새벽녘까지 겪어 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보통의 나날들이 얼마나 축복이었는지를 알게 해 줬다. 아무 일도 없어 따분하게만 느껴졌던 날이 신이 나를 위해 준비해놓은 완전하고 완벽한 하루였음을 알게 되었다. 당연한 숨, 당연한 공기, 당연한 음식, 당연한 숙면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 하루에 매일 아침 감사하며 눈을 떴어야 했음을 코로나에 확진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매일 기적을 바라 왔는데, 기적은 매일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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