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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Feb 27. 2022

이제 와서 취향 타령

명확한 취향을 갖는다는 것

"다음 생애엔 잘생긴 남자로 태어나서, UDT 갈 거야."라는 말을 가끔 했다. 반은 농담 반은 진담으로. 단지 사회적으로 위험이 더 노출된다는 점 때문에 제약이 있다 생각이 들 때면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에 남자일 것, 그것도 우락부락한 남자일 것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대한민국 여자로 태어나서 우리는 취향대로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응 나는 취향대로 살아왔어"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수동적인 선택에 젖어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나 좋다고 하는 이성들 중에 가장 괜찮은 친구를 만나서 사귀고 어느 정도 사귀다가 헤어지고 그러다가 결혼할 나이가 돼서 딱히 헤어질 이유가 없으니 결혼하게 되는 그런 길을 밟아 왔을 거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결혼할 나이가 돼서 헤어질 이유가 없지만 딱히 결혼할 이유도 없어서 헤어진 걸 제외하곤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성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거나 심지어 관심이 있다고 의사를 꺼내 본 적이 없다. 단 한번, 호감이 있었던 친구가 고백을 해왔을 땐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내 첫사랑이었고, 유일하게 후회하는 연애를 했고 유일하게 잊지 못하는 사랑이고 좋은 기억이었다.


90년대 생이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세대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여자는 수동적이다. 내 앞에 고백하는 친구가 나한테 잘해주고, 매너 좋고 괜찮다는 판단이 서면 그 고백을 받고 사귀게 되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 나 좋다고 만났던 이성친구는 도통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싸우고 화해차 만났는데 화가 두배, 세배 더 났다. 그때 느꼈다. 외모적으로 호감을 못 느끼면 좋아하기도 힘들고 오래가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어떤 스타일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돌직구 스타일이었다. 변화구라는 게 없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툭툭 내뱉었다. 만난 지 하루 이틀 만에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대화 맥락 없이 갑자기 '00이 보고 싶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번을 해대는 걸 들을 때마다 기가 차면서도 좋았다. 잘 알던 사이도 고백을 하면 그때부터 다시 알아가기까지 최소 3개월 이상은 걸리는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나는, 마음의 장벽이라는 게 거의 없어졌다. 그는 내 마음에 쏙 드는 말과 행동으로 사로잡았다. 도대체 얼마나 여자를 많이 만났으면 이렇게 다듬어진 남자가 내 앞에 있는 것일까. 그동안 연하만 계속 만나오다가 '이제야 기댈 수 있는 듬직한 오빠가 나타난 건가' 싶었다.


Girls, be honest

외모로 따지면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키도 크고 듬직했으며 운동을 아침, 저녁으로 하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는 성실한 스타일이었다. 생김새는 곰과여서 둥글둥글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귀여움이 있어 볼 때마다 귀엽단 생각이 들었다. 외적인 부분들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때 알았다. 강하게 끌리는 외적인 요소가 갖춰지면 싸워도 쉽게 풀리고 귀엽게 여겨지겠다 싶은 거다. '이제 와서 웬 취향 타령일까'싶다가

이제야 알게 된 명확한 내 취향 덕분에, '본능적으로' 용서가 될 수 있는 스타일을 알게 된 덕분에, 앞으로 시간 낭비, 감정 낭비하지 않아도 된 것이 아닐까. Girls, be honest with your t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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