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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May 02. 2022

매일 이별하고 있구나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상반기 유독 헤어짐이 많았다. 회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팀장님 퇴사 소식이 있었다. 약 1년 반 가까이 우리 팀 리더이셨고 또 1년 간 다른 팀 리더가 되셨을 땐 모르는 문제에 대해 어느 때고 의견을 여쭈어보던 그런 리더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이었다. 퇴사하시면서 회사에서 두 번째 매출을 담당하는 사업부으로의 이동을 추천하셨다. 타 사업부로의 전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 팀의 리더를 설득하고 이동하는 부서의 상무급 리더와 직속 상사와의 면접을 통과해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옮겨간 곳에서 2개월 즈음 이제 좀 적응하나 싶을 때였다.


재택근무를 하던 와중에 사업부 리더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 부서에게 일을 직접적으로 내리시는 분의 퇴사라니. 다른 곳으로 이직하신다고 했다. 나를 이쪽으로 오라고 추천하시고 데려오신 분이 2개월 만에 퇴사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퇴사 소식을 듣고 나서 면담을 했을 때

"내가 이걸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를 반복하셨다. 그리곤 "네가 사업전략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내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오지 않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 뒤로 겨우 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입사 동기가 퇴사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좋은 곳으로의 이직이라고 했다. 친한 동료를 잃는다는 건 고된 직장생활의 즐거움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동기보다 정을 많이 붙였던 동료이기도 했다. 축하해주는 것과는 별개로 그를 떠나보내는 마음도 좋지 않았다. 마침 퇴근길에 있는 회사여서 저녁에 종종 만나자며, 질척이는 걸로 마음을 정리했다.


다시 보통의 일상을 살던 수요일 밤, 2~3년을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이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병원에 달려갔고 그렇게 3박 4일을 장례식장에서 애도를 했다. 이렇게도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 애도할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할 만큼 충분히 울고 기도하며 지냈다. 그리고 월요일이 왔다. 팀장은 주간 회의를 하자고 했다. 지난주 업무와 이번 주 업무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이제부턴 불편한 이야기를 할 거예요"라고 했다. 본인의 타 부서 발령이 확정됐다는 이야기였다. 불과 2개월 전이었다. 같이 일해보자고 적극적으로 설득하던 팀장이었다. 이렇게 내 직속 상사 2명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전에 하던 일에서 다른 일로의 전환을 결정하고 하겠다고 타인에게 지속해서 의견을 내는 일은 힘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쩌면 직장생활 중 마지막 도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가 이런 거라니.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로 업무는 손에 잡히지 않았고 집에 오면 소파에 붙어서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저녁에 있던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직장에는 소위 '삼촌'이 있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부터 시시콜콜하게 '일방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했던 분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너는 어째 나만 보면 우니?" 신입일 때 언젠가 한번 운 적이 있었나 보다. 그게 언제였는지 진짜 그랬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서러운 마음에 말을 하다 살짝 눈물이 맺힌 것을 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네 잘못이 아니야" 도대체 어른들은 왜 (물론 나도 어른이지만)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그렇게 해대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헤어짐이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건가. 7년 전쯤 같은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해외에서 지내다 한국에 들어와서 반갑게 맞아 주고, 결혼도 축하해주었는데, 3~4개월 만에 이내 해외로 다시 나간다고 했다. 만나는 인연이 많을수록 헤어지는 슬픔은 어쩔 수 없는 건가. 헤어짐의 속도가 얄궂다. 보통의 일상이 그립다. 이별을 받아들이기 벅찬 날들이 아니라 무탈한 보통의 일상 말이다. 


#지금헤어지는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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