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인 에세이인데, 저자의 삶과 통찰이 핵심이 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과 책표지의 동화적인 몽환스러움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함축하는 비유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책의 핵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진실이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게 준 영향과 당신이 책을 고를 때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을 정리했다.
신정옥 흔들리는 꽃
첫째, 내게 인간으로 태어나 지적 탐구를 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해 줬다는 점에서 인간의 품격을 느끼게 해 줬다. 대학교 졸업을 이래로 어언 10여 년간 내가 가진 질문과 고민거리에 입각해 그러한 부분을 해결해 줄 요량으로 읽을 책을 선택했다. 어렸을 때 한때는 '문학소녀'였다는 말이 퇴색되고 의미가 없어졌을지도 몰랐다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 독서 동호회에서 선정한 유명한 신인 작가의 소설책들을 읽었을 때도 그저 시간 낭비라고 여겼었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가진 세상에 대한 프레임을 인지할 수 있게 건드려줬다는 점에서 어느때고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무엇이 우월하고 나은지에 대해 끊임없이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을 나의 인지 세계를 툭, 하고 건드려줬다. 그것도 매우 지적인 방식으로. 줄거리의 핵심이자, 충격적인 하나의 진실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다이다. 말하자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줄곧 '그렇다'라고 배웠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과연 진실일까? 모든 사실들을 하나하나씩 검증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셋째, 책 '듣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줬다. 밀리의 서재에는 나같이 출퇴근 시간이 4시간 걸리는 사람을 위해, 혹은 운전하면서 들으라고 주는 친절한 서비스가 있다. 음성으로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 나는 자격시험이 끝나자마자 이 책을 틈틈이 '음성'으로 듣기 시작했다. 만약 음성으로 읽지 않았다면, 활자 속 다양한 생물 지식들로 인해 진득하게 읽어 내려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일정한 속도로 술술 읽어 내려가 주기에, 우리 뇌가 활자를 읽으면서 '너 이거 이해 안 되잖아, 앗, 외계어!'라고 제동 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할 것은 오직 하나였다. 책 듣기를 클릭하는 것. 그 뒤에는 마음껏 문장들을 향유하면 되었다.
신정옥 흔들리는 꽃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문학장르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하나의 시작이자 선물이 될 책이다. 에세이집과 소설책의 중간단계로서 포지션을 가졌다. 비문학쟁이는 사실을 중요시하는데, 우리네가 기존에 가진 지식 세계를 뒤흔들면서 뇌를 말랑말랑하게 깨워준다. 그러나 동시에 문장 자체가 세밀하게 묘사된 연유로, 인문학적 감수성에 한껏 젖을 수 있다. 그리고 결국은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무릎을 치게 되는(시사점) 경험까지 가져갈 수 있다. 특히 INTJ와 같은 성격유형자라면 지적 호기심을 건드리는 문장들이 계속 나오기에 분명 끝까지 흥미롭게 읽어 내려갈 것이다.
새해를 맞아 우리 씽큐베이션 1기가 선정했던 <10배의 법칙>에 이어서,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있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이 책을 선정한 우리 멤버들에게 감사하다. 마침 내 인생의 타이밍도, 회사 업무가 바쁜 1~3월 시즌을 지나, 자격증 시험공부를 거쳐, 한 박자 즈음 쉬어갈 수 있는 길목에서 만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