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선 국제 면허증만으론 오토바이 운전을 할 수 없다. 1종 대형 면허까지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따로 발급을 받아야만 단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데 발급받는 데까지는 2주 정도가 소요된다. 나는 치앙마이의 외곽 지역도 구경하고 싶었기에 오토바이 면허가 꼭 필요했다. 그러나 면허도 없이 운전할 배짱은 없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했겠나. 발급받기로 했지.
면허가 없는 2주간은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주 멀리까진 못 나가겠지만 그래도 걸어 다니는 것보단 나을 테니.
면허를 발급받으려면 일단 재외국민 등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데 치앙마이에 있는 한인회에서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마침 한인회는 내가 묵고 있는 숙소와 멀지 않은 거리(도보로 25분)에 있었기에,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갔다 와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내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날씨였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너무 많이 내리면 그냥 썽태우를 타고 갔다 와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오지 않는 것 같아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또 계산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날씨는 변한다는 것이었다. 5분쯤 달리니 비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치앙마이 교통 상황은 어찌나 정신없는지 깜빡하면 저승으로 가겠구나 싶었다. 아침 일찍부터 빗속을 뚫으며 차와 오토바이가 쌩쌩 지나다니는 도로 위를 달리니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열정적으로 페달을 밟게 된다. 누가 보면 누구 목숨 구하러 가는 줄 알겠다. 서류 하나 발급하러 가는뎅.
한인회에서 필요한 서류를 신청하고 병원에서 건강검진 진단서까지 뗀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맡겨놓은 짐을 찾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어제 찾은 행복을 누리러. 그러니까, 걸어서 세 발자국만 가면 있는 그 괜찮은 카페에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일종의 보상심리랄까. 어제 바퀴벌레 팟타이가 내 기분을 망쳤으니, 이 괜찮은 카페가 나를 위로해줘야만 한다,
펀 포레스트 카페 FERN FOREST CAFE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라즈베리 무스 케이크와 아이스 카페 라떼를 주문했다. 그런데 종업원이 내게 볶음밥을 갖다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라즈베리 무스 케이크와 볶음밥의 공통점을 못 찾겠어서 결국 미안한 얼굴로 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당황한 종업원은 미안하다며 다른 테이블로 옮겨 갔다. 맛있어 보이던데 그냥 먹어볼 걸 그랬나.
이윽고 내가 주문한 라즈베리 무스 케이크와 아이스 카페 라떼가 나왔다. 색상이 인위적인 것이 꼭 핑크, 보라색 건물과 자동차들로 초록 나무들과 보색 대비를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는 태국과 딱 어울린다 싶다. 그런데 윽, 카페 라떼가 달다. 당연히 시럽은 안 넣어주는 줄 알았지. 카페 라떼가 왜 달아? 달달한 케이크에 달달한 커피라니, 너무 슬프다. 그렇다고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할 수도 없다. 내가 모르고 시킨 거니까.
다시 숙소로 돌아가 짐을 찾고 썽태우를 잡아 타 새로운 숙소로 이동했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살 내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 직원이 한 달 사는 거냐고 재차 묻는다. 어제 다른 직원도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뭔가 그 눈빛 속에 속 편한 부잣집 아들내미를 보는 듯한 선망과 서글픔이 느껴져 괜스레 맘이 불편했다. 저.. 저도 2년 동안 모은 군적금 깨서 온 거예요...
계약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보증금)을 지불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원래는 한 이틀간 열심히 발품 팔아보고 결정하려고 했는데, 나답지 않게 그냥 처음 본 이곳과 계약해버렸다. 나는 누구보다도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인지라,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최소 일주일이 걸린다. 그런 내가 한 달간 살 방을 별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놀러 온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대 전 여행을 다니며 항상 아쉬웠던 점이 예민하게 깨어있는 내 오감을 표출할 방법을 알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머리와 가슴속에선 계속해서 ‘이걸 그리고 싶다’, ‘이걸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는데 막상 하려니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치앙마이에 온 것이다. 예민하게 오감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싶어서. 어디 한 곳에 한 달쯤 눌러앉아 살면서 그동안 쌓아 놓은 재료들로 요리를 해보고 싶었다. 때마침 올해 안에 내는 것이 목표인 내 책의 교정 작업도 해야 했기에, 지금보다 더 적당한 타이밍은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방을 선택하는 데 별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 룸 컨디션, 동네의 분위기, 수영장이나 짐과 같은 공용시설 등 인터넷에서 미리 봐 둔 정보(김글리님의 포스팅 https://brunch.co.kr/@tjkmix/165 을 참고했다.)와 다른 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빨리 어디라도 들어가 진득하게 글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여행지에서 오감이 예민하게 깨어나는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다. 사람은 낯선 공간, 낯선 분위기, 낯선 사람, 낯선 음식에서 오감을 곤두세운다. 누군가는 이것을 두려움 혹은 설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행은 두려움과 설렘이 동반하는,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낯섬을 사는 행위다.
그러나 돈과 시간을 들여 찾아온 낯선 곳에서 나는 자꾸만 익숙한 것을 찾는다. 오감이 더 예민해지길 바라는 한편, 했던 것, 먹었던 것, 봤던 것에 끌려 다닌다. 점심 메뉴만 해도 그렇다. 내 손가락은 언젠가 먹어봤던 것 같은 음식 사진을 가리킨다.
집이 생기고 나니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 한병도 없으니 쇼핑이 시급한 상황이다.
자전거 렌털 샵에 들러 2주 동안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2주 550바트) 자전거를 타고 치앙마이에서 도심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라는 마야몰에 갔다.
마야몰의 3층에는 다이소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다이소를 생각하고 필요한 생필품을 사러 들어갔는데 찾는 물건이 없다. 휴지도, 식기 세제도 없다. 도라에몽 프로펠러 머리띠, 용도를 알 수 없는 인형 등 이상한 물건만 판다. 뭐야, 엄마 여기 이상해...
다이소에 실망하고 대충 필요한 것만 사서 나왔는데 내 손엔 도라에몽 삑삑이 인형 두 개가 들려있다. 보는 순간 안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집이 생긴다는 것은 돈, 돈, 돈이다. 구해야 하는 집도 돈이요, 집에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것도 돈이요, 사러가는 길도 돈이요, 전기세도 수도세도 다 돈이요, 돈, 돈, 돈이다. 입주 첫날이니 돈이 많이 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이 쓰리다. 그걸 아는 사람이 도라에몽을 샀어 그래?
여행지 정보
호스텔 바이 베드 HOSTEL BY BED 바로 옆에 있는 예쁜 정원이 딸린 카페였다. 식사류에서 디저트까지 거의 모든 메뉴를 취급하고 있었다.
케이크 맛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특별한 맛도 아니었다. 커피맛은 별로였다. 카페라떼에 시럽이 들어간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별로였다. 가격은 두 개 합쳐 155바트.
낮보다는 밤에 오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전날 밤 보니 분위기가 정말 끝장났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