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고향은 치앙마이

노스게이트 재즈바 ; chiang mai, 2017

by S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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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고향은 치앙마이


걱정이 가득 찬 밤이 잦았다. 치앙마이는 걱정을 털어내기 위해 찾았던 곳이었지만 혼자였기 때문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가득 찬 머리를 뉘이고 잠드는 게 일과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입에 붙어버린 혼잣말을 매일 밤 일기처럼 녹화해두기도 했다. 카메라 앨범 안에는 군대를 갓 전역한 20대 후반의 고민과 걱정들이 한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간절했다.


생각이 많아질 땐 움직였다. 걷기, 요리하기, 사진 찍기, 식사하기, 운동하기. 그게 무엇이 됐든 몸을 움직이는 일은 잡념을 지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하늘이 어둑해지고 침대에 누우면 밀려오는 갖은 걱정과 고민들은 어쩔 수 없었다. 자유를 찾고 싶어 이 먼 땅까지 날아왔는데 텅 빈 밤이 주는 시련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분명 호의호식하고 있었지만 정신 어딘가에 나사가 하나 빠진듯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반쪽자리 자유였다.


어느 날이었던가, 반쪽짜리 자유를 참지 못하고 카메라 하나 들고 문 밖을 나선적이 있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식당, 길거리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 거리를 메운 수많은 관광객들로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했다. 올드타운으로 들어가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늘 보는 풍경들, 매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이 밤이 왠지 모를 위안이 되었다. 조금 나아진 기분에 누구라도 하나 붙잡고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창푸악 게이트가 가까워졌다. 치앙마이의 올드타운은 동서남북으로 여러 개의 게이트가 뚫려 있는데, 북쪽 중앙에 위치한 게이트가 창푸악 게이트다. 남쪽의 치앙마이 게이트에서부터 북쪽의 창푸악 게이트까지, 오늘 밤의 생각을 반쯤은 흘리고 왔을 만큼 꽤 많은 걸이를 걸어왔다. 창푸악 게이트가 가까워지자 어디선가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였다. 뒤를 돌아보니 노스게이트 재즈바가 있었다. 아, 이곳에 있었구나. 노스게이트 재즈바는 치앙마이에서 매우 유명한 재즈바로 이 근방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 같은 발견에 조금 신이 났다. 자리를 잡고 앉아 창 비어 한 병을 주문했다. 그리고, 맥주 한 병을 다 비울 즈음 공연이 시작되었다.


태국인 보컬이 부른 팝송으로 가볍게 시작한 무대는 가요를 거쳐 재즈 공연으로 넘어갔다. 드럼과 피아노, 그리고 색소폰의 소리가 밤하늘 가득 울렸다. 게이트 너머로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자유로운 영혼이 된 음악은 재즈바에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가뿐히 춤을 추었다. 재즈 공연을 그렇게나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재즈에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가 있는 지도 처음 알았다. 색소폰 연주자의 즉흥 솔로가 특히 그러했다. 연주자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말 그대로 '온몸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마치 색소폰에 뜨거운 키스를 퍼붓듯이, 즉흥이 맞을까 싶은 확신으로. 그는 모든 힘을 다해 속이 꽉 찬 음표를 만들어냈다. 곧 있으면 작은 재즈바가 그의 열정으로 가득 차 터질 것만 같았다. 뜨거워진 열기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곳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되어있었다. 밤새 이 연주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잡념들을 모두 지울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연주는 끝이 났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여느 때처럼 씻고 나와 불 끈 어두운 방 침대 위에 누웠다. 역시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날 차오른 생각들은 조금 다른 그림이었다. 재즈바의 사람들, 눈을 감고 오로지 이 순간에만 집중하던 그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낸 자유로운 영혼의 이름이 재즈였다. 갑자기 닥친 즉흥 연주에도 주춤하지 않고 뜨겁게 키스를 퍼붓는 게 재즈였다. 어쩌면 자유란 건 가장 가까운 데 있을지도 몰라. 용기가 생겼다. 그래, 뜨겁게 부딪혀보자, 재즈처럼. 누가 재즈의 고향이 뉴올리언스라 했던가. 이제부터 재즈의 고향은 치앙마이다.


"재즈는 자유를 뜻합니다. 재즈는 자유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나가서 즉흥 연주를 해보고, 위험을 감수해보고,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마세요."

-데이비드 브루벡 (재즈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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