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고쿠의 런치 플레이트 ; okinawa, 2017
편식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김치같이 매운 음식은 잘 먹지 못했어요"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만한 흔한 대답이다. "처음 보는 낯선 음식은 못 먹었어요" 역시 쉽게 납득할 만하다. 그렇다면 "외국어를 보면 밥을 못 먹어요"는? 혹은 "매니큐어 칠한 사람을 보면 밥이 안 넘어가요"는? 납득 하기가 조금 힘들지 않은가. 납득하기 쉽지 않은 이 대답은 편식에 대한 경험에 답하는 나의 이야기다. 그렇다. 나는 외국어를 보면, 매니큐어를 칠한 사람을 보면 밥을 못 먹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적 편식이 굉장히 심했다. 또래 친구들이 먹기 싫어했던 김치나 시금치 무침 같은 반찬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나 낯선 외국어, 낯선 사람, 낯선 환경 속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쉽게 밥을 넘기지 못했다. 한 번은 새빨간 매니큐어를 칠하고 온 엄마가 된장찌개를 끓여준 적이 있는데 억지로 된장찌개를 먹었다가 토를 한 적이 있다. 매니큐어를 칠한 엄마의 모습이 난생처음이라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자와 영어 등 온갖 외국어 간판과 광고물이 쏟아지는 남대문 시장에 갔을 때 주린 배를 부여잡고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 밥을 먹다가도 TV에서 외국인들이 외국어를 하는 모습이 비치면 밥맛이 똑 떨어지곤 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엄청난 인종차별주의 같다. 그러나 인종이 아니라 낯선 것이라면 뭐든지 거부감이 느껴지던 때였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다행히 지금은 익숙한 것이 낯선 것보다 많아져 편식도 사라지고 없다.(너무 잘 먹어서 문제다.)
오키나와 북부에 위치한 카페 '고쿠'에서 점심에만 먹을 수 있다는 '고쿠 런치 플레이트'를 주문해놓고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이곳 아이들은 편식을 할까? 오키나와 여행을 다니면서 낯선 식재료의 모양과 맛에 어렸을 적 편식하던 버릇이 살갗 위로 다시 올라와 개미들처럼 슬금슬금 기어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키나와는 우리가 대개 알고 있는 일본 음식들과 다르게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가진 곳이었다. 세계에서 장수하는 사람이 제일 많기로 유명한 곳이 오키나와인 만큼 그곳의 음식들은 확실히 장수할 만한 이유가 납득되는 맛이었다. 가이드북에서 소개해주는 오키나와 음식들에 호기심은 가득했지만 막상 입 안에 넣기엔 조금 망설여지는, 그런 음식들과 나 사이의 밀당이 한참이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오키나와의 아이들도 어릴 적 나처럼 편식을 할까.
쓸데없는 생각에 잠길 무렵 눈 앞에 고쿠 런치 플레이트가 놓였다. 직접 제작한 듯한 예쁜 자기 접시 위에 처음 보는 채소 절임, 채소 튀김, 파프리카 무침, 단호박 조림과 당근 나물 따위가 소박한 모양새로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고기는 찾아볼 수 없는 채식 식단으로 모두 오키나와의 땅과 바다에서 난 음식들이란 설명이 곁들여졌다. 오키나와에 이런 음식뿐이라면 이곳 아이들의 편식은 잦을 수밖에 없겠군, 생각하며 따뜻한 된장국으로 가볍게 목을 축였다. 담백한 된장국의 맛이 입 안을 산뜻하게 헹궈주며 왠지 기분 좋은 식사가 될 예감이 들었다. 가장 먼저 손이 간 것은 시금치 무침이었다.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해 버무린 시금치 무침에선 이 땅에서 자란 건강한 흙의 맛이 났다. 따뜻한 현미밥을 함께 곁들이니 입 안 가득 햇볕이 들어찼다. 입을 오물거리며 바라본 눈 앞의 풍경은 식탁 위에는 없는 또 다른 별미였다. 달큼한 두부조림 한 입에 맑개 개인 하늘 한 숟갈을 곁들이고, 아삭한 채소 절임 한 젓가락에 바다 한 모금을 마셨다. 내 안에 자연을 들인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마 저 부엌에선 구름과 바다를 잘 버무린 플레이트 위에 햇볕을 담은 시즈닝을 뿌리는데 한창인지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찌든 마음은 맑게 개여 있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편식하지 않겠구나.
낯선 음식을 입 안에 들이는 일은 처음 보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젠 하늘 한 숟가락과 바다 한 모금이면 낯선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을 보니, 세상을 포용하는 심장이 조금은 더 커진 것이 아닌가 괜히 기분 좋아져 본다.
BACKPACKMAN 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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