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의미

첫 가족여행, 가을의 교토 ; kyoto, 2017

by SHUN

눈물의 의미


전역 후 가장 하고 싶은 일 1순위는 여행이었다. 그냥 여행이 아닌, 가족 여행. 태어나서 가족들과 다 같이 여행을 떠났던 적이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여 살리던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여행이란 아마 굉장한 부담이었을 테니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 그 근처에 잠깐 들리는 것 정도가 우리가 했던 가족 여행의 전부였다.


여행을 계획하는 나의 마음은 조급했다. 상황이 더 나아지면..., 여유가 되면..., 늘 이런 생각으로 다음으로 미뤄왔지만 지금이 아니면, 더 늦어지면 정말 다시는 가족 여행이란 걸 떠날 수 없을 것 만 같았다. 아빠의 암 투병이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에서 '무조건 가야만 한다'는 확신으로 불씨를 피운 것이다.


11월, 가을이었다. 여행지 선정은 간단했다. 11월의 교토. 붉은 단풍과 노오란 은행잎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눈 부시게 아름다운 그곳. 사찰을 좋아하는 엄마, 아빠에게도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몇 번 가본 곳이었기에 가족들을 데려가기에도 안심이 됐다. 처음엔 아빠, 엄마, 나 이렇게 세 명이서 떠날 생각이었지만 누나도 함께 떠날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 6명이 떠나는 대가족 여행이 되었다. 아빠, 엄마, 누나, 나, 그리고 누나의 어린 아들과 누나 뱃속에 있는 둘째 아들.


각오는 했지만 가족 여행은 생각보다 더 쉽지 않았다. 시작부터 가족들에게 교토와의 첫 만남을 간사이 공항에서 숙소까지 오는 만석 난카이 열차로 맞이하게 해야 했으니 말이다. 교토에 도착하자마자 가족 전부 사람들 틈에 끼여 한 시간을 넘게 서서 와야 했는데, 임신한 누나와 2살짜리 어린 조카까지 있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는 난방이 잘 되지 않아 많이 추웠고, 집 근처에는 식당이 없어 첫날 저녁은 맛이 없는 라멘으로 때워야 했다.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떠 렌터카를 점검하고, 오늘 갈 곳을 확인하고, 운전을 하고, 열심히 찾아놨던 맛집에 가고... 나름 철저하게 준비하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변수는 예상치도 못한 때에 계속해서 생겼다. 더불어 그 시즌 교토는 관광객들로 혼비백산이었고 그 와중에 어린 조카와 임신을 한 누나까지 있으니, 이 여행은 난이도 별 4개 반쯤 되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사고 없이 가족을 안내하는 것이 임무가 되어버린 나는 마냥 즐기기가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데려간 장소나 식당을 좋아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차게 행복했다. 돌아오는 날도 잘못 산 티켓 때문에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은 건강하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3박 4일의 짧고도 길었던 내 인생의 첫 가족여행이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정오가 지나자 느지막이 눈이 떠졌다. 묵은 피로와 부담감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는지 바위에 깔린 사람처럼 죽은 듯 잠들었다 깬 것 같았다. 그 상태로 침대 위에 앉아 잠시 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난 3박 4일 교토에서 가족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러다 갑자기 양볼을 타고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울고 있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머릿속엔 다행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만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게 다행이었다. 몸이 아픈 아빠와 그 때문에 고생했던 엄마, 그리고 임신한 누나와 어린 조카까지, 다들 힘든 상황인데 이 모두가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함께 다녀올 수 있단 사실이 참 신기하고 다행이고 감사할 뿐이었다. 3박 4일간 나를 묶고 있던 긴장과 부담이 사르르 풀리며 이 모든 게 무사히 끝날 수 있었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런 말이 있다. 소중한 것이 생기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는 말. 정말로 그렇다. 소중한 것이 생기면 그것이 너무 소중해 누군가에게 빼앗길까 불안하고 두렵다. 11월, 가을의 교토는 가족이란 내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했다. 하염없이 흘렀던 눈물은 소중한 걸 빼앗기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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