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힐링 여행

아프지 않은 척, 오키나와 ; okinawa, 2017

by S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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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힐링 여행


오키나와. 독특한 기류가 흐르는 곳이었다. 일본 최남단의 섬이 가진 습한 열기도 그러했지만, 불과 몇 세기 전 '류큐'라는 다른 이름을 지닌 국가였던 깊은 사연 또한 더운 공기 중으로 떠다녔다. 오키나와는 류큐라는 이름의 독립된 국가였지만 1897년 일본에 강제 복속이 되어 일본에게 희생을 강요당하다 2차 대전 말기 미국과 일본의 전쟁터로 희생양이 된 곳이다. 섬에 주둔해있던 일본군들은 오키나와인들을 강제 징병하여 총받이로 내몰았고 그 결과 수많은 오키나와인들이 희생을 당했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그런 아픔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요한 일상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독특한 기류는 지워지지 않았는지 일본어로 된 거리의 간판과 이정표는 어디선가 빌려온 언어처럼 느껴졌고, 낯선 오키나와 음식과 문화들은 '이곳은 일본이 아니야'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분명 일본 땅을 밟고 있지만 일본 같지가 않은, 오키나와는 확실히 특별한 기류가 흐르는 곳이었다.


오키나와를 찾은 이유는 모험보다는 휴식이었다. 푸른 바다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생각 없이 뒹굴고, 맥주 두 캔 마시며 영화 보고 그러다가 잠이 들고, 뭐 그런 것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오키나와 힐링여행.


힐링을 위한 조건은 참으로 까다로웠다. 우선 원하는 분위기의 숙소를 선점하고, 힐링할 수 있는 스팟들을 사전에 검색하는 것이 중요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을 테니 맛집도 리스트에 넣고, 남들이 다 가본다는 관광지에도 가봐야 하니 리스트에 넣고, 그러다 보니 가야 하는 곳이 빠르게 불어나 짧은 일정에 오키나와 땅 전체를 돌아다니는 모양새가 되었다.


힘들었다. 아무리 차를 끌고 다닌다고 하지만, 하루에 몇 백 킬로씩 달리는 일은 힘이 든다. 창밖으로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있으면 뭐해, 좌우 전방 살피며 운전하기가 바쁜데. 결국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강제 힐링 여행이었다. 쉬는 것이 무언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미바루 비치 근처의 하마베노차야浜辺の茶屋 라는 카페도 스팟 중 한 곳이었다. 액자처럼 걸린 에매럴드 바다를 볼 수 있는, 인스타 사진으로 걸어놓으면 좋아요 100개는 거뿐히 넘을 듯한 그런 카페. 뭔가 그곳에 있으면 근심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힐링을 누리려면 20킬로를 운전하고 주차장을 찾아 약 25분간 헤매다가 웨이팅을 적어놓고 그 앞을 서성이며 기다리기까지 해야 한다. 물론 카페는 사진대로 아름다웠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창문이 액자처럼 자리마다 걸려있었고 찰랑이는 파도소리는 훌륭한 bgm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곳에 앉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다. 하나 이 휴식을 누리기엔 너무 값이 비싼 여정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곳이 내 휴식을 위한 장소였을까?


붉은 노을을 뒤로 한채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사이드 미러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쉬자고 온 여행에서도 죽도록 쫓기고 있구나.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않은 힐링이란 작은 박스 안에 이 큰 몸을 죽자고 욱여넣으려 했으니 그런 회의감이 들만도.


오키나와, 특별한 기류가 흐르던 그곳. 어쩌면 그곳에서 얻을 수 있던 가장 큰 휴식은 그저 그 기류에 몸을 맡기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 섬이 흘린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잔흔을 지워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이 녀석을 위로하며 말이다. 다시 그곳을 찾는다면 쫓기는 휴식이 아닌 아픔을 묻어둔 채 바람과 물을 흘려보내는 오키나와에 조용히 귀를 대고 있어야겠다.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큼 따뜻한 휴식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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