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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May 27. 2016

그리고 싶은 여행지 13

카메라도 눈도 아닌 종이 위에 담아내고 싶었던 여행지 모음

나는 그림 그리는 게 취미다. 사실 요즘엔 취미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그림을 안 그리고 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관련학과 전공을 하기도 했었고, 그림을 그리면 생각이 정리되는 효과가 있어서 가끔 머리가 터질 듯이 생각이 많아질 때면 스케치북 한 권과 연필 들고 카페 가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곤 한다.
지금은 연기전공을 하고 있는데, 그림 그리는 취미가 다른 예술활동에도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기도 해서 내가 가진 재산으로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뭐든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른 분야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여행을 다닐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그림 같은 풍경을 정말 많이 보기 때문이라기 보단, 그냥 다니다 보면 순간순간 그림으로 담고 싶은 순간이 많기 때문.
사진으로 담고 싶다! 하는 생각과는 또 다른 느낌. 영감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머릿속에 이런 재료로 이렇게 담으면 멋있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여건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두 명 이상이 함께하는 여행에선 더 힘들기 마련. 그래서 그런 순간은 어떻게든 사진에 담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진을 다시 끄집어내 하나씩 그려나가는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소개하는 그림들은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던 장소의 사진과, 정말로 그림으로 남긴 작품(?)들이다. 작품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그릴 생각이다. 그리고 싶은 순간이 정말 정말 많이 있었으므로... 자, 그럼 이만 말을 줄이고..

방콕, 카오산의 오후
Khao San Road in the afternoon, Bankok, Thailand, 2013
재료 : 종이 위에 연필

Khao San Road in the afternoon, Bankok, Thailand, 2013
Khao San Road in the afternoon, Bankok, Thailand, 2013

2013년에 찾았던 방콕 카오산 로드의 모습이다. 그때 한창 방콕에서 시위 중이어서 광장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 있고 정신없는 상황이라 카오산로드를 찾는데 애를 많이 먹었었다. 한참을 돌고 길을 묻고 또 물어 겨우 찾아온 카오산로드. 생각보다 휑하고 초라한 모습에 조금 실망했지만, 날이 어두워지자 카오산로드는 본모습을 드러냈다. 카오산로드는 무조건 밤에 가야 할 것.

카오산로드에 처음 진입했을 때 느꼈던 낯선 공기를 담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 유러피언, 동양인, 흑인 다양한 인종이 섞인 재미난 골목. 재밌는 곳이다.

2014년에 다시 찾았지만 2013년 처음 찾았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던 카오산 로드.




사라예보, Light Room
Light Room, Sarajevo, Bosnia Herzegovina, 2014

재료 : 종이 위에 연필, 컴퓨터 채색


Light Room, Sarajevo, Bosnia Herzegovina, 2014
Sarajevo, Bosnia Herzegovina, 2014

사라예보에서 에어비앤비를 했는데, 웬걸, 집이 너무 좋은 곳이었다. 사라예보 시내에서 한~참 언덕을 올라와야 닿을 수 있는 곳이긴 했지만, 집 컨디션도 너무 좋고, 주인도 친절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정~말 정말 저렴했다. 사라예보에서 총 3박을 했는데 집이 너무 좋아 거의 이틀 동안은 집안에서 뒹굴뒹굴했던 기억이 난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집안 여기저기를 찍다, 엽서를 쓰다 일어난 테이블을 보니 분위기가 좋았다. 늦은 밤이었지만, 그림에선 빛을 햇빛으로 담고 싶었다.




제주, 겨울바다

Winter Sea, Jeju Island, South Korea, 2015

재료 : 종이 위에 사인펜


Winter Sea, Jeju Island, South Korea, 2015
그리는 중, Jeju Island, South Korea, 2015

제주도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에 두 번째로 방문했었다. 사실 고등학교 때 갔던 제주도는 잘 기억도 안 난다. 수학여행이기도 했고, 워낙 시간도 많이 지났고...

협재해수욕장에서 아름다운 물 빛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빨간 코트를 입은 좋은 피사체의 여인이 해변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원색 옷을 입은 피사체들을 정말 좋아한다. 넓디넓은 바다 도화지 위에 물감으로 콕 찍은 느낌이 나기 때문... 그래서 종이 위에 담아내고 싶었다.




교토, 별의 다리

Bridge of stars, Kyoto, Japan, 2013

재료 : CG


Bridge of stars, Kyoto, Japan, 2013
Kyoto, Japan, 2013

사진은 낮인데 그림은 밤으로 바꿔 그렸다. 원래 낮으로 그리려고 했는데, 저 다리와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밤으로 바꿔버림.

교토는 2013, 2015년에 방문했었다. 또 갈 계획을 자꾸만 세울 정도로, 정말 인상 깊고 좋았던 도시가 교토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인진 모르겠지만 거리마다 다 그리고 싶은 장소들 뿐이었다. 더군다나 비까지 내려주니 교토가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완전히 취할 수밖에 없을 터.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타이밍을 잡아 이곳저곳 셔터를 눌러대며 담아봤다.

위에도 말했듯이 난 원색 옷을 입은 피사체를 좋아한다. 사진에서도 사람들이 원색 옷을 입고 원색 우산을 들고 있다. 저 장면이 맘에 들었었나 보다.




교토, 비의 목소리

Voice of Rain, Kyoto, Japan, 2013

재료 : 크라프트지 위에 연필, 컴퓨터 채색


Voice of Rain, Kyoto, Japan, 2013
Kyoto, Japan, 2013

사진은 여름인데 그림은 가을이다. 이런 식으로 날씨, 시간, 계절을 그때 기분마다 바꿔서 그려버린 게 많다. 이걸 그릴 당시엔 교토에 가을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기에. 도시 전체가 빨갛고 노란 단풍으로 물들었을 때의 교토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싶어서, 낙엽으로 바꿨다. 아직 가을에 가진 못했지만, 정말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교토는 왠지 4계절 다 아름다울 것 같지만, 가을이 가장 궁금한 도시.

장난으로 고양이도 한 마리 집어넣었다.




오사카, 오사카의 카페

Osaka Cafe, Osaka, Japan, 2013

재료 : 종이 위에 볼펜, 커피 채색


Osaka Cafe, Osaka, Japan, 2013
Osaka Cafe, Osaka, Japan, 2013

오사카 여행.. 아무런 계획 없이 공항에서 가이드북 하나만 산 채로 도착했기에, 막상 와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일단 한국에서 카우치를 신청해놔서 오사카에서 카우치서핑을 하기론 했는데, 집주인이 집에 늦게 들어온다는 얘기에 도톤보리 근처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 그래서 그냥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눈 앞에 보이는 카페를 담기로 했다. 그림을 그릴 생각으로 뭘 들고 온 게 아니라서 일기장으로 쓰던 노트를 펼치고, 볼펜으로 눈 앞에 보이는 걸 그린 다음 먹다 남은 아메리카노가 있길래 채색까지 했다. 알뜰하군.

그림재료, Osaka, Japan, 2013




런던, 젖은 거리

Wet Road, London, U.K, 2013

재료 : 종이 위에 사인펜


Wet Road, London, U.K, 2013
London, U.K, 2013

그린 그림 중에 비 오는 날이 유독 많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나 보다 내가.

런던에선 총 8일간 묵었는데, 7일 동안 런던답지 않게 날씨가 쨍쨍하고 좋다가 마지막 날 이렇게 비가 쏟아지졌다. 비 오니까 더 런던 같았다. 내가 생각했던 런던의 이미지. 거리가 물에 젖으니 런던의 원색 건물들과 붉은 버스 등 다 그 색이 더 아름다웠다. 카메라가 물에 젖는지도 모르고 그냥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댔다. 런던의 비 오는 거리는 더 많이 그려놓고 싶다. 파리와 같이. 파리의 비 오는 느낌과는 또 굉장히 다르다.




포지타노, 포지타노 악단

Positano Band, Positano, Italy, 2013

재료 : 종이 위에 연필


Positano Band, Positano, Italy, 2013
Positano, Italy, 2013

만원 버스에 끼여 힘들게 포지타노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거짓말처럼 팡파르가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결혼식이 끝나고 행진(?) 같은 걸 하고 있었는데, 악사들이 거리에 나와 팡파르를 불고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서 축하해주고 있었다. 햇빛은 너무 아름답게 빛났고, 동화 같은 마을에서 동화 같은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커플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축복하게 되더라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관광객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나 혼자 이 기분을 전부 만끽하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이어폰 꼽고 영화 보는 느낌이랄까... 동화 같은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내 그림에선 그 느낌이 전혀 표현이 안된 듯 하지만.. 포지타노의 아름답던 모습도 나중에 다시 한번 그려볼 생각.




제주, 셔터 소리

Sound of Camera shutter, Jeju Island, South Korea, 2015

재료 : 연필, CG채색


Sound of Camera shutter, Jeju Island, South Korea, 2015

두 번째 겨울에 찾은 제주도였다.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날 겨울바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센티하여졌다.

방파제에 올라가 차갑게 얼어붙은 제주의 바다 이 곳 저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교토, 셔츠

Shirts, Kyoto, Japan, 2015

재료 : 연필, CG채색


Shirts, Kyoto, Japan, 2015

도톤보리에서 새로 산 셔츠가 마음에 들었다. 비 오는 날 입고 싶던 그 셔츠를 입은 날 때마침 비가 내렸다. 빗줄기가 은은하게 내 셔츠에 퍼지더니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문양이 되었다. 빗줄기 사이에서 비 오는 풍경을 담고 있던 나는 어느새 빗줄기와 하나가 되었다.




서울, 날씨 좋은 날

Sunny day, Seoul, South Korea, 2015

재료 : 연필, CG채색

Sunny day, Seoul, South Korea, 2015

뮤직비디오 촬영 중이었다. 처음으로 가본 북악 스카이웨이를 따라 내려오는 길은 20여 년간 서울에서 살아온 내가 처음 본 또 다른 서울의 모습이었다. 날씨도 참 좋았고, 분위기도 참 좋았고, 모든 게 참 좋았던.




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해의 낮과 밤

Day and Night of The Adriatic Sea, Dubrovnik, Croatia, 2015

재료 : 연필, 채색 CG


Day of The Adriatic Sea, Dubrovnik, Croatia, 2015
Night of The Adriatic Sea, Dubrovnik, Croatia, 2015

낮이 밤이 되는 줄도 모르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 만으로 필요한 건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가족이란 저들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평생을 함께 하는 존재.




교토, 민슈쿠 (民宿)

Minshuku, Kyoto, Japan, 2015

재료 : 연필, CG채색


Minshuku, Kyoto, Japan, 2015

2층으로 방을 배정받은 나는 1층을 내려다보면 이끼가 가득 낀 녹색 연못에 핏빛 잉어들이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조용한 복도에 나와 1층을 바라볼 때면 왠지 모르게 으슬으슬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이는 단순히 느낌뿐이었을까? 몇백 년이 넘은 민슈쿠에 묵었는데 이 곳에 어떤 특별한 사연이 날 그 느낌으로 이끌었던 건 아닐까? 상상은 여행을 더 다채롭게 만들곤 한다.




이상이다. 아직도 그리고 싶은 곳이 산더미같이 쌓여있고 또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여행지는 더 많이 쌓여 있겠지. 같은 장소더라도 언제 어떤 때 누구와 갔느냐에 따라서 다가오는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 내가 갔던 장소들을 한 번 씩 다시 밟아보는 여행도 해보고 싶다. 아직은 그것보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내는 재미가 더 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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