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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Jul 13. 2020

프리다 칼로 팀장님과 페페 형님

천재 장사꾼이 짊어질 무게란

 근무 첫날, 나의 유일한 동료이자 사수가 되어줄 형님 한 분을 소개받았다. 슬픈 개구리 페페-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밈, 커다랗고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인상적인 개구리-를 닮은 그는 마치 군대에서 첫 후임을 받은 선임처럼 설레어하는 눈치였다.


 매장에 도착하자 페페 형님은 옷부터 갈아입으라며 유니폼을 건네주었다. 와이셔츠는 꼬깃꼬깃했고 까만 앞치마 이곳저곳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물질이 묻어 있었다. 아마 바로 전에 일을 그만둔 사람이 입었던 옷이겠거니 싶었다. 다행히 조리모는 새 것이었다.


 라커룸으로 들어와 꼬깃꼬깃한 블루 스트라이프 와이셔츠를 입고 이물질이 묻은 앞치마를 물티슈로 박박 닦아 허리춤에 매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빳빳하게 각이 선 조리모까지 쓰고 나니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살펴본 후 가벼운 포즈를 취해보았다. 나름 귀여운 걸? 내친김에 셀카도 찍어보았다. 페이스 북에 업로드도 했다.

 평소에 그렇게 자주 드나들던 마트의 정육 코너에서 일을 하게 되다니. 왠지 연극 속의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 것 같아 설레는 마음이 앞섰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매장으로 내려갔다. 한창 장사 중인 프리다 칼로 팀장님과 페페 형님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매장에서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제조와 판매.

 오픈과 동시에 돈가스 15~20kg, 떡갈비 100~200개씩을 만든다. 모두 오늘 하루 팔 물량이다. 수제 소시지도 판매하지만 완제품이기에 만들 필요는 없다. (실제로 그 소시지가 수제인지 아닌지 알 길도 없다.)

 오전에는 거의 이런 식으로 상품을 만들고, 오후에 이 상품들을 판매하는 시스템. 매장 직원은 프리다 칼로 팀장님, 페페 형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뿐이라 이 모든 업무를 사이좋게 나눠서 한다고 했다.


 대충 이 정도의 설명을 듣고 나서 나는 바로 실전 모드에 투입되었다. 마침 시식 매대 앞에서 열심히 호객을 하던 팀장님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페페 형님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자, 자, 수제 돈가스예요~! 오늘 매장에서 직접 만든 신선하고 맛있는 수제 돈가스 팝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른들도 좋아하는 수제 돈가스, 드시고 가세요~!"

 페페 형님의 멘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세명의 손님이 다가와 돈가스를 시식하기 시작했다. 마침 비어가는 시식용 트레이가 눈에 띄었다. 눈치껏 방금 튀겨져 나온 돈가스를 꺼내 먹기 좋게 잘라 트레이 위에 올려야지 생각하는 찰나, 페페 형님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너무 크게 자르지 마.”

  나는 돈가스를 새 모이만 하게 잘게 잘라서 내었다. 그러자 페페 형님이 또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아니, 이건 너무 작잖아. 적당히, 적당히.”

 시식용 돈가스로 적당한 크기란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고민했다. 그 사이 손님들은 이쑤시개 꼬지 하나에 새 모이만한 돈가스를 네다섯 개씩 꼽아 입 안에 넣고 있었다. 고민이 무색했다. 돈가스에 관심 있는 척 포장된 돈가스에 시선을 살짝 흘리는 것 또한 놓치지 않았다. 오호라. 나도 시식할 때 많이 쓰던 수법인데. 이 손님 보통이 아닌 걸. 이를 놓칠 새라 페페 형님은 판매 멘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매장에서 직접 만든 돈가스예요. 국내산 등심이고요, 여기 고기 두께 좀 보세요. 이런 돈가스 밖에서 사 드시려면 하나에 만 원, 만 오천 원 하잖아요? 여기서 여덟 장에 만 오천 원에 가져가세요.”

 단 한순간도 오디오가 비지 않는 노련함이 느껴지는 멘트였다. 페페 형님의 멘트가 통했는지 손님 중 한 분이 매대에 놓여있는 돈가스 한 팩을 들어 올렸다. 이 때다 싶어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저 오늘 처음 일하는 날인데요, 아까 이거  먹고 기절했어요. 너무 맛있어서.”

 내 입에서 그런 뻔뻔한 멘트가 나올 거라고 예상 못했다. 손님은 빵 터졌고, 손에 들고 있던 돈가스 팩을 내게 건넸다.

 “하나 주세요.”

 세상에, 내가 팔았다. 치솟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우측의 비닐 봉투를 힘껏 뜯어 돈가스 한팩을 담아 손님에게 건넸다. 서비스로 크게 잘라 놓은 시식용 돈가스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건 마치 본능이 이끈 천재 마에스트로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장사 잘하시네. 많이 파세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장사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첫 번째 손님이 자리를 뜨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프리다 칼로 팀장님이 조용히 다가와 흥미로운 듯 눈썹을 들썩였다.

 “제법 하네?”

 약간 자존심이 상한 것 같은 페페 형님은 더 커진 눈망울로 한 마디를 얹었다.

 “처음치곤 잘했어.”

 아무래도 나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것은 아닐까. 형님도 분발하세요, 같은 멘트로 맞받아치는 것은 아마추어의 대응 방법. 천재적인 장사꾼은 앞으로 겪게 될 시기와 질투의 무게를 세련되게 받아줘야 한다.

 “거기 고객님!!! 돈가스 좀 드셔보세요. 어른들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너무 좋아해요. 아드님이 좋아하시겠다고요? 아니, 아드님이 계셨어요? 세상에. 근데 어쩜 이렇게 고우세요!!! 누난 줄 알았네!!!”

 어디서 그런 능구렁이 같은 멘트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만, 방언 터진 사람처럼 말도 안되는 멘트들을 줄줄이 쏟아냈다. 지난 몇 년간 연기 수업 받으며 배운 뻔뻔함이 결국 빛을 보는구나.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될 지는 상상도 못했다만.

 그리고 동시에 느껴졌다. 내 등 뒤에서 길을 잃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무언가를. 그것이 슬픈 개구리 형님의 눈동자였다고는 난 말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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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 shun-y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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