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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Jul 20. 2020

워커 홀릭

돈까스 명상에 기대어

  일을 시작한 지 세 달 째, 어느덧 모든 업무가 완전히 몸에 익었다.

 첫날 예상했던 대로 나는 장사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심지어 ‘이달의 우수 사원’으로 뽑히기까지 했다. 6개월 정도만 하고 유럽으로 도망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나의 입지가 너무 커지는 건 아닌가 걱정 아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실세가 되었다(직원이 세 명뿐이긴 했지만). 실세가 가진 권력이라고 해봤자 팀장님의 이쁨을 더 받을 수 있는 것 정도였지만, 팀장님 아래 직원은 페페 형님과 나 뿐이라 아주 큰 메리트가 아닐 수 없었다.

 팀장님은 유독 나의 스케줄 변동이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데 매우 긍정적이고 또 적극적이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소시지나 그날 다 팔지 못한 돈가스, 떡갈비 등을 집에 가서 먹으라고 싸 주시거나 밖에서 따로 점심을 사주기시도 했다. 가끔은 대놓고 편애를 하기도 했으니, 나중에는 늘 구박받는 캐릭터가 되어버린 페페 형님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물론 팀장님의 기대에 맞춰 나도 정말 열심히 일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일곱 시 출근, 도착하자마자 냉동실에 물건을 정리하고 그날 판매할 돈가스와 떡갈비를 만든다. 보통 장사는 물건을 다 만들고 난 뒤 정오부터 시작된다.

 그때부터는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흘러간다. 매장에 손님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시식 매대 앞에 목석처럼 서서 밀려오는 졸음을 참아야만 하는 시간은 고문 같았다.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오픈 준비 시간이 좋았다. 돈가스와 떡갈비를 찍어내는 단순한 움직임이 마음에 뜻밖의 평화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고기에 달걀물을 묻혀 촉촉하게 적신다. 눈처럼 수북하게 쌓인 빵가루 언덕 속에 고기를 던져 그 위에 다시 빵가루를 덮는다. 몸의 무게를 실어 꾹꾹 누른 뒤 톡톡 털어내면 아기 염소 엉덩이 같은 뽀송뽀송한 돈가스 한 덩이가 완성된다. 완성된 돈가스는 줄을 맞춰 차곡차곡 쌓아 랩을 씌워 포장 한다. 포장까지 마치고 나면 비로소 우리 매장의 시그니처 메뉴, '수제 돈가스' 한 팩이 완성된다.


 목표한 돈은 다 모을 수 있을까? 전공과 관련도 없는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남들은 다 군대 가는 시기에 입대를 미뤄도 되는 걸까? 비록 6개월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늘 불안과 초조함에 흔들렸던 나였다.

 깨끗한 도마 위에 재료들을 끄집어내고, 달걀물을 입히고, 빵가루를 덮는 등의 단순한 리듬은 마음에 평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아무래도 돈가스로 명상을 했던 것 같다.


 그즈음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일을 했다. 비행기 표는 벌써 구입해 여행 날짜가 정해졌으니 정말 목표한 금액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으기 위해선 버는 것만큼 쓰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밥을 굶었다. 가능한 한 모든 약속들도 차단했다. 점점 혼자 있는 시간, 멍 때리는 순간이 많아졌고, 공허해진 마음은 이상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이를테면 시식용 돈가스를 냉동실에 들어가 몰래 먹는다던지, 저녁을 굶어 아낀 돈으로 코인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실컷 부르고 온다던지.

 장사 멘트를 하는 것 외에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정육 코너에서 일을 하는 동료들이라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아주머니, 아저씨 뿐 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또래의 페페 형님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말이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통장에는 목표했던 돈이 점점 쌓였지만 어쩐지 나는 점점 비워지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 앞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차에 치여도 별로 안 아프지 않을까?’

 하루 종일 지하에서 일을 하다 햇빛을 보러 나왔던 어느 날은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아주 질 나쁜 손버릇도 생겼다. 판매하는 돈가스를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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