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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Jul 27. 2020

떨어지는 것엔 가속도가 붙는다

무서운 습관

 습관은 참 무섭다. 나도 모르는 새에 점령당한 무의식이 내 행동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은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몸에 익지를 않는데, 나쁜 습관은 물속의 잉크처럼 무서운 속도로 퍼져버린다.


 시작은 프리다 칼로 팀장님의 호의였다.

 수제 돈가스와 떡갈비는 매일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며 판매해야 한다. 때문에 최소 이틀이 지나면 상품을 폐기 처분하는 것이 원칙이다.

 보통은 최대한 하루에 팔 수 있을 만큼만 찍어내려 하지만 항상 완판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폐기 상품도 자주 나올 수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이 발생한 폐기 상품은 팀장님의 재량으로 집에 가져갈 수 있었다. (상품성만 떨어질 뿐, 먹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품이다.)

 나를 예뻐했던 팀장님은 폐기 상품을 자주 챙겨주셨다. 그때부터 잘못된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폐기하는 상품은 들키지만 않으면 몰래 가져가도 되겠구나, 하는.

 그로부터 몇 주간 폐기 상품을 몰래 가져가기 시작했다. 퇴근할 때 앞치마 아래 감추고 매장 밖으로 빠져나오면 아무도 몰랐다.


 처음엔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장되었던 이 나쁜 습관도 두 번, 세 번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엔 두 장이었던 돈가스는 세 장, 네 장으로 늘어났고, 퇴근 도장을 찍을 때마다 어색하게 굳어있던 내 표정도 어느 순간부턴 능청맞게 자연스러워졌다. 보안 직원에게 눈인사를 건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때 그만뒀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꺼워진 내 낯짝처럼 앞치마 아래 숨긴 돈가스들도 점점 불어났고 결국엔 덜미를 잡히고야 말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날, 누군가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출입을 관리하는 보안 직원이었다.

 "앞치마 아래 그거 뭐예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불룩한 앞치마를 부여잡고 버티기도 잠시, 모양 빠지게도 비닐봉지 속의 돈가스와 떡갈비들이 바닥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내 심장도 바닥 위로 툭 떨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떨어진 돈가스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으며 개미만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 이, 이거... 폐기 처분할 거라 나가면서 버릴 거예요."

 "폐기 처분한다고요? 흠. 잠시만요. 점장님한테 연락해서 물어볼게요. 폐기 상품 맞는지."

 점장님에게 연락이 닿아선 안됐다. 그분에게 연락이 닿으면 프리다 칼로 팀장님에게도 연락이 닿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팀장님이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범죄의 현장에 붙잡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윽고 사무실에 점장님이 찾아왔다. 마감을 하다 올라오셨는지 앞치마와 고무장갑 차림 그대로였다.

 넓은 사무용 책상 위엔 축 늘어진 돈가스와 떡갈비가 담긴 비닐봉지 한 덩이가, 그 앞엔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내가 서 있었다. 점장님은 비닐봉지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보안 직원에게 잠시 자리를 비워 달라 부탁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죄송합니다."

 점장님은 나를 부드럽게 타일렀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훔친 것도, 걸린 것도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바로 일주일 전, 매장 우수사원으로 선정되었다며 표창 카드를 건넨 사람이 바로 이 점장님이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절도범으로 점장님 앞에 서 있다. 얼굴이 뜨거워 들 수가 없었다.

 점장님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김 팀장님. 통화 가능하세요?"

  프리다 칼로 팀장님이었다.

 "윤직원이 퇴근하면서 돈가스 가지고 나가는 게 걸렸는데, 이거 폐기 상품이에요?"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갔고, 점장님은 휴대폰을 나에게 건넸다.

 "받아봐."

 점장님에게 건네받은 휴대폰 액정 위로 프리다 칼로 팀장님의 이름이 스쳤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심장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요동쳤다. 열심히 쌓아놓은 신뢰도 다 한 순간이구나.

 팀장님이 내게 어떤 배신감을 느꼈을지 짐작해보며 죄스러운 마음으로 수화기에 귀를 갖다 대었다.

 "...여보세요?"

 "점장님한테는 내가 잘 말해놨어. 집에 들어가서 푹 쉬어. 마음 쓰지 말고."

 그렇게 전화는 종료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얼굴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하루 열 시간, 햇빛조차 들지 않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 자신의 감정에 소홀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공허함은 그런 순간에 태동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따위는 중요치 않아져 버린 스스로를 끌고 가는 삶 속에서. 결국 나는 스스로를 타이르지 못했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순간까지도. 나를 향한 혐오와 부끄러움, 죄책감과 서러움 같은 감정들이 터져 얼굴을 한가득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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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 shun-y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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