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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Oct 26. 2020

파니니를 좋아하게 된 이유

우연이 모여 여행이 된다

 파니니를 좋아한다. 파니니를 파는 카페에 가면 무조건 파니니를 시킨다. 신선한 연어가 들어있으면 더 좋다. 따뜻하게 데워주면 더, 더 좋다. 따뜻한 연어 파니니라는 취향이 생기게 된 그 시작은 우연으로 부터다.


 파리에서도 마찬가지로 돈이 없었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거라곤 저렴한 빵 뿐. 빵을 즐겨 먹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먹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빵은 가난한 내게 차선이자 최선인 식량이었다.

 빵의 본고장답게 파리에는 수많은 빵집이 늘어서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만만한건 대형마트 베이커리 코너 구석의 큼직한 바게트 같은 녀석이었다. 프랑스 태생이라 엄청 저렴한 데다 크고 묵직한 게 주린 배를 제법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게트로 연명하기도 며칠 째. 슬슬 한계에 도달하려던 어느 날, 센느 강 근처에서 한 빵 집을 우연히 발견했다. 낡은 간판 아래 쇼윈도엔 깜빠뉴, 바게트, 통 식빵과 같은 커다란 빵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노란색 꽃무늬 에이프런과 두건을 두른 아주머니가 웃으며 반겨줬다. 왠지 이야기가 숨어있는 곳 같아 두근거렸지만 그렇지 않은 척 했다.

 수많은 빵 중 나는 파니니를 골랐다. 바게트는 지겨웠고 다른 빵들은 너무 크거나 비쌌다. 그나마 파니니가 가장 만만해 보였다. 인생 파니니와의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파니니를 꺼낸 아주머니는 와플 기계처럼 생긴 그릴 기계 쪽으로 갔다. 파니니는 예열이 된 그릴 위에 올라가 뚜껑이 덮인 채로 꾹 눌렸다. 몇 분 뒤, 뚜껑을 열자 먹음직스러운 갈색 그릴 문양이 찍힌 파니니가 빵긋하고 나타났다. 입에 침이 고여 꼴깍 삼켜버렸다.

 아주머니가 건네준 따뜻한 파니니를 받아들어 매장 밖을 나왔다. 또 정신 나간 파리의 하늘이 침 뱉듯 비를 뱉고 있었다. 파니니가 식을까봐 심장 가까운 곳에 꼭 껴안은 채 달렸다.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강변 벤치가 눈에 띄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가 점점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배낭 속의 우산을 꺼내 펼친 채로 가슴에 품었던 파니니를 꺼내보았다. 아직 뜨겁다.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낯선 희열. 이렇게 맛있는 빵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 세상의 맛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알던 세상이 확장되었는지도 모른다.

 한 입 베어 문 따뜻한 파니니엔 훈제 연어 몇 조각이 들어 있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연어와 함께 어우러지는 향긋한 소스와 야채, 그리고 따뜻한 빵이 어우러져 입 안에서 춤을 췄다. 단언하건대 다시는 이보다 맛있는 파니니를 먹을 수는 없으리.

 

 시작은 그랬다. 마침 그래서, 상황이 들어맞아서,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이유들 속에서 마주한 우연 속에서 나의 세계는 확장되었다. 파니니가, 카우치 서핑이, 처음 와 봤던 도시가, 낯선 사람이, 충동 속의 새로운 비행기 티켓이 그랬다. 여행은 우연의 연속이었고 몇 개의 우연이 모여 여행이, 나의 세계가 되고 있었다.


 파리를 떠나기 전, 마야와 두 번 더 만났다.

 마야에게 추천받은 식당에서 함께 프랑스 가정식을 먹었고, 반짝이는 조명의 에펠탑 아래서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셨다. 술에 취한 그날 밤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알딸딸한 상태로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찾아가선 기념사진을 찍고 가로등이 켜진 오밤중의 파리를 뛰어다녔다. 마지막 날은 헤어지며 한국에서 사온 한국 전통 문양 북마크를 선물했다. 진심으로 감동한 마야의 표정에 도리어 머쓱했던 내가 기억난다.


 모네의 집이 있던 지베르니에선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무작정 걸었다. 걷다보니 뜻밖의 절경이 나왔다. 초원 위로 말 서너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녹색 들판 위로 이름 모를 붉은 꽃들이 바람에 휘날렸다. 모네의 그림이 따로 없는 풍경이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늘 니콜라와 함께였다. 자꾸만 도랑에 빠지는 멍청한 내 마리오 카트 캐릭터는 마지막 날까지도 힘을 쓰지 못했다. 심심하면 함께 영화도 봤다. 내가 집에 있는 동안은 자꾸 무언가를 만들어줘 살이 빠질 틈이 없었다. 일주일이 넘어가니 그곳이 내 집처럼 편해졌다.


 그 모든 것은 우연이었다. 이곳으로 애써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마주할 리 없는, 마주 할 수 없었던 우연.


 우연한 순간들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때 먹었던 파니니를 오늘의 나는 서울의 브런치 카페에서 찾는다. 마야와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셨던 그 날 파리의 풍경은 나의 침실 머리맡 액자가 되어 걸렸다. 지베르니에서 우연히 마주했던 모네의 그림 같은 풍경은 지금도 틈만 나면 낯선 길을 걷게 만든다. 파리에서의 우연한 순간들은 모이고 모여 결국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우연이 모여 여행이 되고 여행이 곧 나의 세계가 된다. 여행은 몰랐던 나를 발견하며 그 세계를 확장시키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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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 shun-y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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