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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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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Feb 08. 2022

나이 서른둘, 나와 살기로 했다

독립 일기(1) 독립하게 된 진짜 이유

 이사를 마쳤다. 마땅한 가구도 제때 주문해놓지 않아서 이사 온 공간은 텅 비어있다. 텅 비어있는 방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내가 채워나가야 하는 빈 도화지 같아 설레기도, 한편으론 조금 두렵기도 하다. (정말 두려운 건 다음 달의 내가 마주할 카드값일지도...)

 그럼에도 혼자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데에서 크게 안도한다. 돌고 돌아 결국 마주한, 마주해야만 했던 나만의 공간이다. 빈 공간이나마 온전한 내 것이 되고 나니 깨닫는다. 혼자만의 공간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음을.


 제대로 된 독립을 생각한 건 작년, 그러니까 2021년 6월 즈음부터다. 벌이가 점점 안정되다 보니 이젠 부모님 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 종착지가 공간의 독립이었다. 경제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부분이라면 아무래도 얹혀살고 있는 부모님 집뿐이었으니, 공간만 독립하게 되면 이젠 정말 완전한 독립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즈음 엄마에게 이제 슬슬 나가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엄마는 내게 물었다.

 "왜 갑자기?"

 아무래도 부모님 집에서 같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케어를 받게 되는 부분이 생기니 발전이 더딘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사회적인 통념상 나갈 때가 된 것 같다 대답했다. 사실 내가 나가서 살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크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왜 나갈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연히 알고 있을 것 같던 엄마에게서 '왜'라는 질문을 듣고 나니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을 뿐이었다.

 이후 엄마의 '왜'를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왜 굳이 지금 나가서 살 생각을 했을까? 매매고 전세고 월세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은 정글 같은 현실에 왜 나서서 뛰어들려고 하는 걸까? 집에서 좀 더 머물면서 충분히 돈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봐도 되지 않을까? 집에 있으면 엄마가 맛있는 밥도 해주고, 귀여운 조카들도 자주 볼 수 있는데. 더군다나 부모님은 나를 거의 방임하다시피 자유로이 내버려 둔다. 며칠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뭐라고 하는 일이 전혀 없어, 잦은 간섭에 지쳐 나가서 산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는 남의 일처럼 느껴진지 오래다. 이쯤 되면 나가지 않을 이유보다 집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훨씬 더 많은 건 아닐까?

 그때부터였다. 내가 '나가서 살 이유'를 찾기 시작하게 된 게.


 집 안에서 나만의 온전한 공간이라 하면 내 방뿐이다. 아빠가 TV를 보는 거실과 서재는 아빠의 공간, 엄마가 요가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잠을 자는 안방은 엄마의 공간, 화장실과 부엌은 공용 공간이니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는, '나'만이 존재하는 내 공간은 내 방 하나다.

 이 방 한 칸을 얻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네 가족이 누우면 꽉 차는 단칸방을 시작으로 누나와 함께 쓰던 방을 건너 마침내 생긴 내 방이었으니 그 역사만큼 존재만으로 감사한 공간이었다. 집착에 가까운 내 방에 대한 로망은 작은 방에 꾸역꾸역 꾸며놓은 인테리어만 봐도 짐작 가능했다. 카펫을 깔고, 좋아하는 소품들을 세워놓고, 창가에 선물 받은 모빌을 걸어놓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운 내 방이었다. 하지만 '나가서 살 이유'를 찾기 시작하니, 그 공간마저 온전한 내 공간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첫 번째는 소음이었다. 가끔 집에서 작업을 하거나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 때에 방 바로 옆에 있는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소리, 믹서기 가는 소리,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 등이 방 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런 소리는 내 선택지에 없었다. 오롯한 내 선택이 맴돌았음 하는 공간에 원치 않는 소음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더 이상 이 공간이 내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관심이었다. 부모님은 당연하게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특히 엄마는 내가 집에 있는 시간에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했다. 내가 부담을 느낄 만큼 지나치지도 않은 관심이었기에 늘 감사한 마음뿐이었지만, 내 계획과 선택들에 맞닥뜨렸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구입했던 식품들을 두고 엄마가 밥을 차려준다고 하는 상황 같은 것이다. 재료가 상하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나의 계획이 엄마의 관심과 사랑 앞에서 탈락하는 때가 잦았다. 결국 상한 재료는 버려야 하는 상황과 같은 일들이 생겼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내 선택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엄마의 사랑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 같아 애써 무시했던 것 같다.

 마지막은 섞여버린 취향이었다. 이사를 마친 후, 새 집 싱크대 위 찬장에 내가 샀던 컵들을 줄 세워 놓고 나니 비로소 내가 나와서 살아야 했던 이유가 또렷이 보였다. 이 컵들은 본가에선 가족이 쓰는 여러 컵과 함께 섞여있었다. 어딘가에서 사은품으로 받아온 컵, 선물로 받은 컵, 출처를 알 수 없는 컵... 어쩌면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이리저리 뒤섞인 이 컵과 같지 않을까 싶었다. 각자의 취향과 상황이 한데 뒤섞인, 풍성하지만 각각의 색은 불분명해지는.

 오롯이 내 취향만으로 선택했던 컵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저런 컵과 뒤섞였던 것처럼, 나는 내 선택의 영역에서 벗어난 모든 상황에 불편을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나의 공간 안에서 만큼은 내가 원해서 내가 고른 선택지만을 들이고 싶었다.


 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나눌 수 있는 온기만큼 개인의 영역이 흐릿해진다는 얘기와도 같다. 같이 사는데서 발생하는 불편함은 '사랑'이나 '관심'같은 표현만으로 용인이 되어야 할 것만 같다. 나 또한 가족이라면 그런 불편함 쯤이야 감수하며 살아가는 게 당연한 일인 것 같아 애써 무시했다. 더군다나 내 집이 아니지 않은가.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결국 독립이란 결론에 서른둘이 되어서야 집을 나오게 되었다.

 막상 나와보니 알겠다. 나는 나와서 살고 싶기에 앞서, '나’와 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최대한의 내 선택만이 존재하는,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 '나’와 함께 살고 싶었던 것이다.


 집을 나오면서 엄마가 많이 섭섭해했다. 그간 충분한 신호 없이 갑자기 나와 버린 아들에 섭섭한 기분이 드는   당연한 일이다. 혹시 엄마가  글을 보고 있다면 집에  하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가치관이나 성향의 차이가 아니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적대감도 아니다. 단순히 나의 , , 주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있는 '온전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온전한  공간'으로 방만 옮긴 셈이다. 가족들과 나누고 싶은  있을 때마다 거실로, 엄마 방으로, 아빠의 서재로 언제든  문을 열고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니 몸은 조금 멀어졌다 해도 예전처럼 한결같은 우리 가족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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