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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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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Feb 14. 2022

불안은 더 나아질 거라는 신호야

독립 일기(2) 불안함이 동력이 될 수 있을까?

 늦은 아침 눈을 떴다. 다시 감았다. 그 상태로 한 시간 정도 더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다. 다시 감았지만 이번엔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은 내가 지난밤을 설치며 도피한 곳이다. 가능한 한 더 숨고 싶었다. 눈을 뜨는 순간 마주할 현실이 싫어 자꾸만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까지. 마지막까지 숨을 수 있는 그늘이 존재하는 곳으로.

 내가 일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찾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세상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가늠하지도 못한다. 기능을 상실한 도구는 재활용을 하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팔아버리면 그만이거늘. 사람은 재활용은커녕 중고로 팔지도 못한다. 그러니 일어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없으니, 눈을 떠야 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불안을 잊고 산 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다. 놈이 기어이 내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전혀 뜻밖의 순간이었다. 올해의 시작, 새해였으니까.

 새해라고 하면 희망이란 타이틀과 더 어울리겠지만 올해 1월은 내게 기어이 불안을 안겨준 달이었다.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 점점 길어지자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 12월과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었다. 이런 시간이 일주일, 이주일, 결국 한 달이 넘어가고 나니 불안이 다시 찾아오고야 말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거늘, 생각보다 너무 일찍 다시 찾아온 불안함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제 겨우 안정적 이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불안 같은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사라지긴커녕, 더 얄미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불안을 끌어안고 살아가니 평범했던 모든 것에 균열이 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와중에도, 밥을 먹거나 샤워나 양치를 할 때, 친구를 만나며 즐겁게 대화하는 와중에도 그 녀석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아무래도 가장 곤욕스러운 건 잠에 들기 전 밤과 눈을 떠야 하는 아침이다. 몸을 뉘인 채로 그저 잠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거나, 당장 일어나 무어라도 시작해야 하는 그 순간. 하루의 시작과 끝에 찾아온 불안함은 나의 24시간을 좀먹고 있다.


 불안하기 시작하니 불안의 원인을 좇게 된다. 생각의 끝이 늘 도달하는 곳은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보다 더 번듯하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길이 너무 구불구불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를 나는 불안이라 정의했다.

 불안하고 싶지 않아 많은 고민을 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나를 가장 크게 움직인 한마디는 순간적인 감정을 점화시킬 형이상학인 위로가 아닌 실질적인 해결 방법들이었다.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불안의 이유가 무엇을 할지 몰라 갈팡질팡한 상태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나아갈 길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큰 힌트가 되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의 독립이 맞물렸다. 집을 보고, 계약을 하고, 이사를 하고, 가구와 물건을 채우는, 계속해서 선택과 행동을 수반하는 과정으로 불안을 조금은 진정시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조금의 확신으로나마 선택과 행동을 해 나갈 수 있다는 것.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라는 불안을 앞에 둔 누구에게나 성립하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공식 같았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니 눈앞의 텅 빈 공간처럼 모든 게 처음같이 느껴졌다. 집에선 당연하게 누렸던 모든 게 당연하지 않아 졌다. 냉장고 안의 음식, 인터넷 와이파이 설치, 샴푸와 치약, 심지어 물 한 모금까지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이토록 당연했던 모든 것의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필요한 걸 주문하고, 택배 상자를 뜯고, 냉장고를 채우고, 쓰레기를 버리고. 그러고 나서야 지난 아침 샤워를 마치고 입 밖으로 나직이 되뇌었던 한 마디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이제야 좀 사람 사는 집 같네.'

 나의 동력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움직임-불안함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불안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불안해야 더 좋아지기 위해 지금처럼 발버둥 칠 테니까. 빈 집을 하나하나 채우듯 내게 필요한 것을 찾아 차근차근 채워나가면 된다.

 무언가를 계속해보기로 했다. 불안함도 에너지가 될 수 있다면, 그 힘을 빌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계속해서 세상에 내보이기로 했다. 무기력보다는 차라리 나은 힘이지 않겠는가.

 그간 불안을 피해야 할 존재로만 생각했던 건 아니었나 싶다. 불안은 나를 뒤덮은 곰팡이 같은 존재가 아니다. 차라리 텅 빈 집과 다름없다. 살아가기 위해선 무어라도 채워야 한다. 택배 상자를 뜯고, 냉장고를 채우고, 쓰레기를 버려줘야 한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게 내가 안고 살아가는 불안이란 존재의 정체다.

 나의 불안을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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