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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Mar 21. 2017

22. 최고의 다이어트 방법

먹어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다이어트해 본 적 있나요? 나는 있어요.

 처음은 고등학교 때다. 그때 시도했던 다이어트는 '하루 한 끼 먹기 다이어트'. 약 한 달 동안 아침을 엄청나게 많이 먹고 점심, 저녁은 굶는 것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싶겠지만 의외로 할 만했다. 오후 7~8시 정도가 고비이긴 했는데, 그 시간만 넘기면 다음 날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 꽤 괜찮은 기분이 된다.(배가 고파 잠이 안 오는 게 흠이었지만.) 힘들었던 만큼 효과는 직방이었다. 10kg가 넘게 빠졌었거든요.(건강은 안 좋아졌다. 따라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이 당시 다이어트를 했던 이유는 '내 삶이 너무 힘들게 느껴져서'였다. 처음엔 밥 먹는 것조차 의미 없이 느껴져 식음을 전폐했던 것이지만, 그게 일 주, 이 주가 되다 보니 살이 빠지는 게 느껴졌고, 급기야 욕심이 생겨 다이어트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살은 엄청나게 빠졌었다.

 두 번째는 20살, 재수를 하던 시절이었다. 입시 실패의 기억을 털어내고 새로운 각오로 재수에 임했다. 모든 걸 바꿔버려야겠다는 포부로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는데 그중 1번이 다이어트였다.(지금 생각해보면 1번은 수능 공부여야 했다.) 당시의 나는 내가 살만 좀 더 빼면 연예인이 될 줄 알았었나 보다. 그리고 그게⎯달라진 내 외모가⎯이번 입시의 킬링 포인트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잘못짚어도 한참 잘못짚었지. 어찌 됐든 당시 나는 고등학교 때와 달리 '건강하게'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병행했다. 먹는 양도 줄였고 그에 못지않게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혀 건강해지지 않았다. 운동하면서 먹는 양도 줄였기에 살은 빠졌지만, 턱 끝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얼굴 위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변비도 생겨 일주일 동안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완전히 저질 컨디션의 체력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살은 많이 빠졌었고⎯연예인이 되지는 못 했지만⎯이에 만족했다. 하나 시험 보기 전에 요요가 와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건강도 다시 돌아왔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두 번째 다이어트 경험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20대 중반에 학교에서 뮤지컬 공연을 했을 때였다. 이때 내가 맡았던 역할이 '예수(jesus)'였어서 살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 상태 그대로 무대 위에 올라갔다간 '예수님이 밥을 되게 잘 드셨나 봐'라는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았다. 아무리 무대 위는 환상이라지만 언제나 그것이 면죄부가 되어주지는 않으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울부짖는 예수님 뱃살이 출렁 거리면 집중이 안 될 것 아닌가. 흔히 생각하는 예수의 비주얼에 미치진 못하더라도 뱃살만은 출렁거려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이어트를 했다. 초반에는 술도 안 먹고  먹는 것도 줄이고 운동도 열심히 하다가, 나중엔 타이트한 연습 때문에 저절로 살이 빠졌다.(그래서 매일 술을 먹었다는 건 비밀입니다.) 목표치까진 만들진 못했지만, 그래도 '잘 먹은 예수님'이란 소리는 듣지 않을 정도의 상태로 무대 위에 올랐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세 번째 다이어트 경험이다.


 이 세 번의 다이어트를 통해 크게 배운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살을 빼고 싶다면 살 빼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다이어트 중이다'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의 중심에 '다이어트'라는 네 글자가 박히며 온갖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는 다 받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냉장고에 있는 아무 음식이나 꺼내 맛있게 먹던 중, 갑자기 머릿속에 '맞아, 나 다이어트 중이었지'라는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 입 맛이 뚝 떨어지는 건 물론이오, 젓가락이 닿는 반찬마다 칼로리 계산을 하게 된다. 칼로리 계산을 하자니, (다이어트 중인) 내가 지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언뜻 보면 다이어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보이나 이건 실패다. 이 과정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이런 스트레스는 잔뜩 쌓여있다가 당신을 폭식의 길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살이 빠졌어도, 금방 다시 찔 거라는 얘기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 주말 아침을 맞아 동네를 운동장 삼아 조깅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아침 공기를 마시며 기분 좋게 달리고 있는데 머릿속에 워너비 연예인의 몸이 떠오르고야 만다. '조금 더 달리면, 조금 더 강도를 높이면 내가 바라던 그 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같지도 않은 욕심이 생겨나고 결국 페이스를 초과해버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끙끙대며 일어나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이를 아득바득 갈며 회사로 출근한다. 이런 경험은 다음에 하게 될 운동에 막연한 공포감을 심는다. 운동을 해야겠단 생각은 있는데 '아, 운동하면 내일 아침에 출근하기 힘들 텐데', '다이어트를 포기한 건 아니야. 생계형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것뿐이야', '그래, 당분간 운동은 포기하자.'식의 타협이 이뤄지고야 만다. 결국 그날의 아침운동이 마지막 운동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위의 얘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당신, 왜 공감하고 있는 건데요. 괜찮다. 공감하라. 왜냐면 우리는 움직이기 귀찮고, 세상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잖아요.

 저런 과정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어트를 멀리 해야 하는 것이다. 최고의 다이어트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뭔가 음주는 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같은 문장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을 먹는 것이야 말로 살을 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지름길이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프랑스 사람이 날씬한 이유>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제목은 확실하지 않다.) 다큐는 미국인과 프랑스인들의 다이어트에 대한 인식 차이를 비교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놀랐던 대목은 '초콜릿'이라는 단어를 던져주었을 때 그들이 갖는 이미지의 차이였다. 미국인은 '초콜릿'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살찌는 음식', '고칼로리',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 반면 프랑스인 들은 '사랑', '축복', '행복'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다. 미국인은 초콜릿을 먹으며 죄책감을 느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초콜릿을 먹으며 행복함을 느낀 것이다. 칼로리는 같을지라도 그 인식의 차이가 몸에 끼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진짜 맛있게 먹으면 0kcal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깐!

 하지만 우리는 '초콜릿'을 '행복'으로 인식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오죽하면 누텔라 잼도 '악마의 잼'이 되었을까. 그렇게 맛있으면 '천사의 잼'이 되어야지, 왜 '악마의 잼'인가. '악마의 잼'이라는 별명 자체에 죄책감이 전제로 깔려 있다. 너무 맛있지만 많이 먹으면 살이 찌니까 '악마'의 잼인 것이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꼬마 주인공 올리브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올리브는 미스 리틀 선샤인(어린이 미인 대회 같은 콘테스트)에 출전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진 것인데, 그런 올리브를 둘러싼 가족들은 올리브에게 너도 나도 한 마디 씩 던진다. 아빠는 '네가 지금 그것을 먹으면 패배하는 것과 다름없다. 루저가 되는 거다.'라고 얘기하는 반면 다른 가족들은 올리브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아이스크림의 맛을 신명 나게 묘사한다. 결국 올리브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입안 깊숙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짓는다. 그 순간 관객은 무장해제되어 버린다. '아니 저건, 내 모습이잖아'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스크림 하나로 루저가 된다는 것도 참 웃긴 일인데, 수많은 다이어터들은 정말 아이스크림 하나를 눈 앞에 두고 '이걸 먹으면 난 루저가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 죄책감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초콜릿'을 '살찌는 음식'으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말이다.

 '최고의 다이어트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 왠지 이 공식은 다이어트뿐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 곳곳에도 스며들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에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끊임없이 목표를 되뇌어라'라고 이야기 하지만, 정작 원하던 목표는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때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목표에 집착을 하다 보면 목표를 이루지 못한 자신이 루저가 된 기분이 되어버리고, 금세 포기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낮춰버리고야 만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그리고 행복한 감정으로 만끽할 수 있다면 정신건강에도 이로운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않았던 때에 목표를 이루게 되기도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초콜릿을 먹고도 날씬한 것처럼 말이다. 다이어트도 인생도 결국 집착을 버리는 게 답이다.


 다이어트를 통해 두 번째로 배운 점은, 동기부여를 갖기 위해선 그 반대의 것을 최대치로 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싶다면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배가 부르고 나면, 배고팠던 순간이 그리워질 것이다. 그리고 결심하게 된다. '아, 내일부턴 안 먹어야지.'

 물론, 바로 다음 날 같은 양의 식사를 해 버리는 예외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많은 음식을 밀어 넣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극한의 배부름을 맛봐야 배고픔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될 테니까. 실제로 내가 이 방법을 사용해본 적이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먹은 것을 전부 게워낼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먹었었다. 말 그대로 '쑤셔 넣는' 수준이었다. 배가 바늘로 콕 찌르면 터질듯한 수준이 되어서야 머릿속에 띵 하고 떠오른 생각은 '아, 배고픈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았어. 배고픔을 즐기자.'였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다이어트뿐만이 아니다. 무슨 일이 됐건 일정 수준 이상을 해 보고 나서야 그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 나는 학창 시절엔 가끔 미친 짓도 해봐야 한다는 주의다. 범죄가 되지 않는 선에서의 일탈은 그 시기에 꼭 필요하다. 같은 경험이라 하더라도 10대 시절과 성인이 되고 나서의 감상은 천차만별이다. 감성의 문이 활짝 열려있을 때, 모든 것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해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교과서에서 눈과 귓속으로 주야장천 때려 넣으면 뭐하나. 체화되지 않는 걸. 직접 팔 걷고 나서서 무전여행도 해보고, 길거리에서 미친 척 춤도 춰보고, 학교를 땡땡이치고 멀리 놀러 가 보기도 해야 한다. 그것 역시 극한으로 경험해 보고 나면 그동안 쳇바퀴 돌듯 살아왔던 삶 속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나도 10대 때 미친 짓을 꽤 했다. 더 해 볼걸, 하고 후회하는 걸 보면, 10대 때의 미친 짓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너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일단 미친 듯이 먹어봐야, 왜 미친 듯이 먹지 않아도 되는지 알게 될 테니까.

 물론 부작용도 간과해선 안 된다. 폭식하고 굶는 것은 거식증 증상이 아니던가. 또 이미 충분히 미친 듯 놀고 있는 사람에겐 이런 처방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분들은 부디 이 이야기를 스킵해주길 바란다. 살찐 모습으로 술(혹은 마약)에 잔뜩 취해 '네가 나보고 이렇게 살라고 했잖아'하고 내 앞에 나타나실지도 모르니. 믿으실진 모르겠지만 제 글은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


 어째 써놓고 보니 '진짜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싶다면 미친 듯이 먹고 정신 승리하세요'가 되어버린 것 같은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뭐든 적당한 게 좋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매뉴얼을 따르세요.

 <배낭 멘 곰의 다이어트 '음식'편>
 1. 일단 미친 듯이 먹어서 동기부여를 만든다.
 2. 다음부턴 적당한 양의 음식을 '즐기면서' 먹는다.
 <배낭 멘 곰의 다이어트 '운동'편>
1. 일단 미친 듯이 게을러져서 바닥과 한 몸이 되어버린다. (중요한 건 이를 통해 동기부여가 되어야 한다. 건강하게 땀 흘리던 '운동하는' 내 모습이 그리워져야 한다.)
2. 다음부턴 적당히 '즐기면서' 운동을 한다.

 그나저나 내가 다이어트 매뉴얼을 쓰고 앉아있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글을 쓰는 이 순간도 마카롱 세 개째 흡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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