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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Jan 25. 2017

19. 양치의 시간

잃어버린 기억들을 애도하며

 사라진 양말 한 짝은 어디로 가는 걸까? 사라진 속옷은? 먹다 떨어뜨린 비스킷 한 조각은? 가방에 넣어둔 줄 알았던 노트는? 서랍에 있는 줄 알았던 앨범 사진은?

 생각한다.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가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잃어버린 양말 한 짝, 아끼던 속옷, 비스킷, 게임 CD, 사진, 펜과 노트, 지우개 등의 한데 쌓여있는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사라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것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이때다 싶어 도망을 가는 것이다. 빨래통 속에서 돌아가던 양말 한 짝은 새 짝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바닥에 떨어뜨린 비스킷은 나의 위보다 나은 집을 찾아 나선다. 그들은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에 한데 모여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우리 주인은 참 별종이었어'같은 험담을 할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에는 양말이나 속옷 같은 물건만이 있는 게 아니다. 그곳엔 내가 깜빡하고 잊은 기억들도 있다. '내일까지 접수해야지', '밥 먹고 청소해야겠다', '12시까지 영화관 정문 앞에서 보기로 했지', '그 책은 꼭 읽어야 해', '생일이 17일이었던가', '올해 목표는 매일 운동하기다', '누나한테 갚을 돈이 3천 원'같은 기억들. 자꾸만 새로운 생각이 기존 생각을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버려지는 기억들이다.

 나는 이 버려진 기억들에 '양치의 시간'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이런 생각들은 대개 머리를 감거나, 손을 씻거나, 혼자 밥을 먹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거나, 특히 양치를 할 때 많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적부터 생각이 너무 많았다. 비단 양치를 할 때뿐만이 아니다. 집 안에서 가만히 누워있거나, 홀로 등하교를 할 때까지도 말이다. 사실 그것을 즐겼다. 초, 중학교 시절엔 상상하는 것이 즐거워 일부러 혼자 집에 가기를 자처한 적이 많다. 머릿속에서 영화를 그리는 것이다.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을 만들어낸 뒤,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집에 돌아왔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빠져들어 있으면 어느새 집에 도착 해 있었다. 집이 좀 더 멀었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다. 수업 시간 내내 다음 화를 만들어낼 생각에 설레어 하교시간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때 그 이야기들은 아마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에 가 있겠지. 언젠가 꺼내져 글이든 만화든 영화로든 탄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미안하다. 나이가 너무 들어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거기서 노후를 준비하거라.


 생각이 너무 많다는 건 자료의 양이 방대하는 것이지만, 자료의 질은 일정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끔은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 잡혀 고통받은 적도 많다. 가끔은 머리가 터질 듯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져 머리 뚜껑을 돌려 연 후 뇌를 세척한 다음 다시 집어넣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자료가 완전히 저질인 것이다.

 '저 사람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어', '나를 소심하다 생각하면 어떡하지?', '오늘 머리에 너무 힘준 것 같은데. 오버한다고 생각하려나?', '그만둔다 얘기하면 날 증오하겠지.', '저 머리카락에 붙은 먼지 떼어주고 싶다.', '제대로 정리가 안된 것 같아. 2도 정도 기울었잖아.', '되가 아니라 돼야', '라면 물을 너무 적게 넣었잖아. 내 인생은 망했어.', '이 선물 준다고 오해하진 않으려나?', '술자리에 안 가면 섭섭해할 거야.', '이 여드름 안 없어지면 어떡하지.', '않되요가 아니라 안돼요야.'같은 생각들이다. 이런 생각은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에 가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며 강강술래를 추고 있는 것이다. 내 자유의사로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에 기억을 보낼 수만 있다면 이런 기억만 한 데 묶어 던져 놓을 텐데. 정작 중요한 애들은 제 발로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버리고 싶은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다. 참, 이상한 프로세스야. 날 왜 이렇게 만든 건가요, 조물주님.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중요하고 기가 막힌 생각들이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로 사라지는 게 실상이니, 아깝다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양치할 때 정말 기가 막힌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었거든! 남은 거라곤 '그 생각 정말 죽인다!'했던 기억뿐이다. 진짜 쓸데없는 게 남았네... 정말 화나는 건 양치할 때나 큰 일을 볼 때 이런 번쩍이는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너무해, 노트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잖아. 휴대폰에 메모를 해도 되긴 하겠지만, 휴대폰을 갖고 들어간 상황이라면 기가 막힌 생각이 나올 확률이 희박하다. 엄지 손가락으로 타임라인 쓸기 바쁘거든요.


 그래서 이 글을 적게 되었다. 양치의 시간에 사라져 버린,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로 가버린 불쌍한 나의 기억들을 애도하기 위해서...

 양치의 시간에 잃은 기억들만 모아도 나는 벌써 애플 같은 브랜드를 두세 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물론 농담이다. 돌 잡은 손 내려달라.) 애플 정도는 아니어도 웬만한 중소기업 하나는 차리지 않았을까? 후후. 그렇다고 중소기업 사장님들, 그리 벌벌 떨지 않으셔도 됩니다.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가 존재하는 한 '기가 막힌 생각들'은 영원히 제 곁을 떠날 테니까요...(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애초에 이 글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글을 쓰면 쓸수록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그냥 기분 탓인 건가.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사실은 기가 막히다던 그 생각들이 실은 별 볼일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블록버스터급 영화 뺨치는 꿈을 꿨다가도 깨고 나면 별 것 아닌 경우, 굉장히 많지 않은가. 내 생각들도 그런 류의 것들일 수도 있다. 떠오른 당시에는 '아, 이제 내 인생 폈다' 싶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흔한 생각이거나 별 볼일 없는 생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라진 기억들이 떠오르지 않는 게 다행일 수도 있겠다. 괜히 떠올라서 여기에 열거했다가 '뭐야...?'같은 반응이 쏟아질 수도 있을 테니까. ……글을 쓰면 쓸수록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그냥 기분 탓 맞는거죠?


 그래도 양치의 시간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지금 쓰는 이 글은 양치의 시간에 떠오른 글이거든요. '뭐야, 쓸데없는 얘기만 늘어놓은 글이잖아'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잃어버린 기억들도 죄다 이 글 같은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 기가 막히다던 기억들을 가져다 글을 써도 이런 모양새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요.(이로써 아무도 그 기억들을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아, 잠깐만요. 그래도 다음 글, 읽어보고 싶지 않은가요? 고개를 끄덕였다면, 그래, 그게 내가 양치의 시간을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고개가 가려워서 끄덕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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