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처럼 법을 해석하는 대한민국을 바라며...
아주 오랜 옛 날에 예루살렘에 한 지붕 두 가족이 있었다.
이 집에 사는 두 여인은 3일 간격으로 출산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그 들의 남편이 같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비극이 벌어졌다.
한 아기가 포대기 안에서 죽고 만 것이다.
그 아기의 엄마는 자식을 잃었다는 슬픔보다 머릿속 CPU를 돌렸다.
"그래, 아기를 바꾸자. 그래야 내가 이득을 볼 수 있어."
이 여인의 결심으로 인하여 솔로몬의 재판이라는 스토리가 탄생했다.
솔로몬 왕은 신하들에게 아기의 얼굴을 보고 어느 여인과 많이 닮았는지 판단을 하라고 한다.
신하들은 아기의 얼굴을 살핀 후 아기가 어려서 판단이 불가하다고 아뢴다.
당시 예루살렘에 물건의 주인을 가리가 어려우면 반반 나누는 법이 있었나 보다.
솔로몬 왕은 외모로 판별이 불가능하다면 칼로 아기를 반으로 나누라고 한다.
그러자 한 여인은 급히 나서며 아기를 포기하겠다고 하고
다른 여인은 법을 따르겠다고 말한다.
아기를 칼로 두 동강 내는 법 말이다.
"아기의 엄마는 가려졌다.
자신의 아이라면 절대 칼로 나누자고 할 수가 없다."
솔로몬 왕은 법 해석보다 아이를 대하는 모성을 판단의 기준으로 정한 것이다.
솔로몬 왕의 시대나 지금이나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의 안전이다.
부부가 젊어서 둘째를 갖는다고 해도 죽은 아이가 부활할 수는 없다.
더구나 가정 당 1~2명의 아이를 낳는 요즘 세상에서 아이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세월호의 희생자 아버지가 토해낸 가슴 아픈 시...
"가난했지만 행복했는데, 널 보내니 이제 가난만 남았구나."
솔로몬 왕이 지금 살아있다면 신하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리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본래 주위가 산만하고 시야가 좁으니 운전자가 아이들을 잘 볼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
그래도 이 법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법으로 그 들의 자녀만을 보호하거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