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해우소

일제강점기와 부동산 재개발

광복 75주년을 맞은 소회

by 도연아빠

실향민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남한 사람 대다수는 실향민이다.

고향은 없고 아파트 단지만 남아있다.

어릴 적 아파트에 산 사람이라고 해도 돌아가서 만날 수 있는 동네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재개발은 이 시대 다수의 사람이 좋아하는 이벤트가 되었다.

목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린 언제부터 공동체를 파괴하는 재개발에 환호하게 되었을까?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이런 재개발을 시도한 것은 일본이다.

신작로라는 단어가 그 유산이다.

그 들은 동학농민군을 학살한 현장을 지우기 위해 또는

쌀 등 곡식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도로나 철길을 만들기 위해 마을을 재개발했다.

(경북 안동 독립운동가의 집터에 철길을 낸 일도 대표적 사례다)

이때 소수의 지주를 제외하고 다수의 마을 사람들은 반대를 했다.

마을 안에는 씨족 공동체가 있고 그 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서낭당과 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들의 폭력에 의해 강제로 마을을 떠나야 했다.

일본 측에서 적극 협조한 일부 조선인은 부자가 되기도 하였다.

대표적 사례가 공주 갑부 김갑순이다.


광복 75주년이 된 올해,

재개발에 반대하던 다수의 조선인들은

찬성하는 다수의 한국인이 되었다.

이런 변화가 우리 생활을 삭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모르는 어른에게 인사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젊은이가 노인을 상대로 폭행을 가하는 사건 뉴스는 일상이 되었다.(특히 아파트 경비원 또는 택시기사)

무엇보다 불임 사회 및 고독사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나는 재개발에 반대하지 않는다.

조선 초기 태종 이방원이 왜구의 침입에 고통받는

울릉도 주민을 경상도로 이주시킨 사례와

정조가 수원 화성을 만든 것처럼 원주민 공동체를 유지하는 재개발이라면 말이다.


고독사 그리고 불임 사회를 막기 위해

우리만의 재개발이 필요하다.


2020년이 그 시작이 되기를 소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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