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등 조선 개국공신들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
시무 22조를 코로나 시대에 다시 읽다.
학교에서 배운 국사에서 고려의 비중은 매우 적었다.
항상 통일신라와 조선 중심으로 배운 기억이 있다.
내가 고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국사가 아니라 국어시간에 배운 쌍화점이었다.
쌍화점은 고려 여인이 아랍상인 등과 성관계를 갖는 이야기의 고려가요이다.
이때 이런 생각이 고려에 관심을 갖게 했다.
'하긴, 통일 신라 때도 아랍인이 있었다는데 고려 때는 더 많았겠지. 그런데 이렇게 개방적인 사회가 어떻게 폐쇄적인 조선이 되었을까?'
최근 코로나 19 발병을 보며 이런 추론을 하게 되었다.
'고려가 외지인을 두려워하게 된 계기는 전염병이 아니었을까?'
찾아보니 고려말에 세계적으로 유행한 전염병, 흑사병이 있었다.
국사에서는 고려 말에 왜구와 홍건적의 침략으로 국토가 황폐해졌다는 것만 배웠지 흑사병은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홍건적을 통해 흑사병이 고려에도 퍼지지 않았을까?
전염병이 퍼지면 인건비는 상승하고 종전의 소비 습관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고려 또한 이 병으로 인해 불교보단 경제적인 유학이 사회적 가치가 되고
국제무역이 흑사병으로 중단된 정세 속에서
대규모 농지를 소유한 권문세족에 대한 서민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진 것은 아닐까?
어쩌면 1392년 정도전 등 개국공신의 시무 22조는
포스트 흑사병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시무 22조를 요약하면 이렇다.
국가는 부족한 물자를 나눔에 있어 싸움보다 대화 등 문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중교육을 해야 하고
권문세족이 이자놀이로 서민을 노비화 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재난을 당해 곤경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여 백성으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
공무원은 분야 별로 능력을 갖춘 자를 선발하고 국고를 낭비하면 안 되며 세금 부과도 서민의 경제 형편에 따라 부과해야 하고
백성과 종교계도 미신적인 제사(불교의 팔관회 또는 연등회 등)나 사찰을 건축하는 등에 낭비를 하면 안 된다.
고려시대에도 권문세족의 입장을 따르는 백성과 지식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권문세족의 입장이란 개인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사회가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다수의 고려인들은 1392년 정도전 등 개국공신의 가치를 시대정신으로 선택했다.
우리도 코로나 19로 인해 고려말 백성들과 같은 입장이 된 것은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