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받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나는 오래 사귄 일본인 친구가 있다.
1994년부터 X-JAPAN, MR.CHILDREN 등 일본 음악을 좋아하면서 알게 된 친구다.
최근 그 친구의 조부가 돌아가셨다.
그 친구의 근황을 보며 일본의 장례식은 21세에도 전통방식에 가깝게 진행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조적으로 우리의 장례 절차는 아주 간소해졌다.
결혼식은 화려해지고 고비용의 복잡한 절차가 된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더욱이 직장생활을 하며 직원들의 부고 소식에 조문을 다녀보면 부모나 조부모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는 가족들도 점차 드문 것 같다.
성리학의 나라라는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얻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치유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나의 할아버지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는 무엇일까?
할아버지를 관찰하며 정리한 외상 후 스트레스는 특징은 3가지이다.
첫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강제징용 시 경험한 탄광에서 사고로 배가 터져 창자가 쏟아져 죽은 사람,
강제징병 시 군대에서 이유 없이 교관에게 맞아 머리가 깨져 죽는 사람,
그리고 그 시체들을 좁은 구덩이에 묻거나 태워버리는 장면을 본 일들이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그로 인해 할아버지는 조금만 몸이 아파도 곧바로 대학 응급실로 가셨다.
의사가 아무 문제없다고 진단을 내리면 할아버지는 의사가 돌팔이라고 다른 병원으로 가자 하셨다.
둘째, 인간 불신이다.
할아버지가 징용에 끌려가게 된 계기는 당시 면서기를 하던 친척의 권유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그 당시 지인의(지역 유지, 학교 선생님 등) 권유로 징용이나 징병에 끌려간 분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MBC 무한도전 '하시마 섬'의 탄광을 보면 한 노인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돈 벌러 갔다고? 하시마를?"
(이 느낌이 전달되지 못하는 분들은 다시 보기를 추천한다.)
어쩌면 친척들은 우리 할아버지가 그곳에서 죽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할아버지는 살아 돌아왔고 환항녀가 되었다.(다시 일본군으로 끌려갔지만)
마지막으로 자기 비하이다.
할아버지는 자기 것에 대한 소중함,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우리 들에게도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려운 거 대단한 거 하려고 하지 말고 기술이나 배워.' 또는 '네가 할 수 있겠냐?'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분들이 모두 할아버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는 각자의 재능을 키우고 꿈을 실현하는 것보다 노예의 삶을 강요받았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절박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거쳐 내게 전해진 외상 후 스트레스는 인간 불신 및 자기 비하였다.
그 결과 우리 가정은 매우 가난했다. 사람을 불신하고 자기 비하에 빠진 사람이 부자가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거기다 가정폭력으로 나이 60이 된 아버지는 90이 된 할아버지를 여전히 두려워했다.
그 결과 할아버지는 징용 이후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고독한 삶을 사시게 되었다.
(그에 대한 국가의 보상은 2010년부터 지급된 1년에 80만 원이 전부였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 가정과 비슷한 처지의 가정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대일항쟁기 피해자로 등록이 되면서 2개의 수치를 보게 되었다.
7,554,764명
209,000명
위 숫자는 일본의 태평양전쟁시기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고통을 받은 청년들의 숫자다.
첫 번째는 강제징용으로 탄광 등에 끌려간 분들이고 두 번째는 일본군으로 끌려간 조선 청년의 숫자다.
약 8백만 명의 한 세대가 2명의 자식을 슬하에 두웠다면16백만 명, 3명을 낳았다면 24백만 명이 된다.
현재 남한 인구의 50%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상당히 높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현상의 근원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인이 된 분에 대한 그리움은 그분이 생전에 주신 사랑의 크기와 동일하다.
또 타인에 대한 사랑은 물이 흐르듯 아래로 내려간다.
역설적으로 학교나 군대 폭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가해자의 말은 '나도 선배들에게 맞았다.'이다.
바로 우리 할아버지 세대는 이 땅에서 사랑 대신 폭력의 흐름이 시작된 첫 세대인 것이다.
내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힘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자존심이 강하며 단순하신 분이다.
16백만 명 이상이 되는 가정 중의 일부는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 있어 외상 후 스트레스를 극복했으리라 생각한다.
만일 지금도 고통받는 가정이 있다면 나의 이야기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주말에 영화 관람보다 조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분들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그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나 자신이 동학농민운동, 일제 식민지, 한국전쟁, 분단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되는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암기할 것이 많은 한국사 중 근현대사가 쉽게 느껴질 것이다.
일주일에 1번(일요일) 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