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관습법적 지상권
1916년 일제시대 조선 고등법원의 판결로 인정된 조선의 관습이다.
최초 토지주인에게 토지사용권을 얻은 계약이 존재한다면
경매나 기타 사유로 토지주인이 변경되어도 토지 위에 지어진 건물을 철거할 수 없다는 개념이다.
신기한 것은 위 판결의 효력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경매 등 기타 사유로 구입한 토지에 무허가 주택이 있고
관습법적 지상권 다툼이 있다면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대략 이런 절차로 정리가 된다.
(토지 경매에서 이런 것을 권리분석이라고 한다.)
웃는 얼굴로 임차인을 만난다.
임차인에게 토지사용을 계속하라고 말로 안심을 시킨다.
그리고 식사를 하며 지상권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떠본다.
자리를 끝내고 집에 와서 건물 철거 및 그동안 토지사용료를 납부하라는 내용증명 문서를 만든다.
2~3달 뒤에 내용증명서를 보내고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 자리에서 2~3년짜리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아무 조건 없이 건물을 비운다는 조건이다.
임차인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 관습법적 지상권은 무효화된다.
이 절차는 1910년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아래 판결문을 보면 알기 쉽다.
일제는 통감부 시절, 조선의 관습을 조사하여 일본의 법적 체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활용하였다.
그리고 어느 일본인(내등정길)이 취득한 토지에 거주하는 조선인(황종육)에게 건물을 비우고 나가라는 소송에서
애당초 땅주인의 허락을 받아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의 건물 사용권은 인정하는 것이
조선의 관습이라는 것을 일제시대 조선 고등법원 판사들이 판결로 공식화 한 것이다.
불인정 시 일본인과 조선인들 사이에 야기될 사회 불안이 높았기 때문이리라.
참고로 변호사 현석건은 소설가 현진건(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의 친형이다.
이 분의 일대기가 궁금한데 찾기가 어렵다.
관습법적 지상권은 토지공개념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토지공개념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우리의 사라져 가는 관습이다.
이 관습이 해방 이후에도 유지되었다면 원주민을 몰아내는 재개발 재건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왜 관습은 약화되었을까?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마을 공동체의 소멸이 원인이다.
그리고 이 것이 부동산 투기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