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이슬람 문화를 탄압한 이유
공중보건의 중요성
https://youtu.be/XrI5YQ-Yybk
1427년 4월 4일에 예조에서 세종에게 올린 조서의 내용이다.
‘이 땅에서 한 민족으로 살아가려면
회회족 등 오랑캐의 습속을 금지시켜야 한다.’
예조의 조서에 세종은 윤허하였다.
고려시대부터 한반도에 많은 이슬람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예조는 위와 같은 조서를 왜 작성하게 된 것일까?
검색 중에 흥미로운 자료를 찾았다.
‘세종 재위 9년째인 1427년 7월에 역질(疫疾)이 서울 인근에 발생했을 때도 그랬다.
의정부의 보고에 따르면 역질이 크게 유행해 사망자가 매우 많았는데,
사람들은 녹번현(지금의 서울 홍은동과 녹번동 사이의 고개) 등지에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기도 하고 구렁에 버리기도 했다.
시체가 드러나 비바람을 맞고 썩어 문드러져서 화기(和氣)를 현저히 손상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 보고를 받은 세종의 대응이 인상적이다.
실록을 보면 세종은 “놀라면서 즉시 한성부에 명하여 (시체를 땅에) 묻게” 했다.
이어서 예조에 매장하는 일을 엄중히 검사하도록 지시했다.
마지막으로 세종은 “죽은 자 중에 장사 지낼 친족이 없을 경우
어떻게 매장하는지를 옛 제도에서 자세히 상고하여 아뢰라”라고 명했다(세종실록 9년 7월 9일).’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거나 구렁에 버리는 문화는 우리 문화가 아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화장이나 매장이 우리 문화이다.
역병과 이에 따른 매장문화의 차이가 당시 이슬람 문화를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닐까?
지속 가능한 다문화 사회를 유지하려면 공중보건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이민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해야 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