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감악산 근처에 살던 김참봉은 누구인가?
저주의 대상, 김참봉
감기에 걸린 둘째 아이를 달래서 잠을 재우거나
분유를 먹인 후 소화시키기 위해 안고 있을 때
2015년에 태어난 첫째를 돌봐주신 할머님의 노래 가락을 따라 하게 된다.
그중 내 기억에 강하게 남는 것이 하나 있다.
감기에 걸려 보채던 큰 아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못된 감기야, 김참봉네 집으로 가라!’
'김참봉... 능참봉은 들어봤는데... 뭐지?'
대부분 가락은 아이의 빠른 쾌유를 바라는 문장이지만
이 문장은 김창봉의 집으로 감기바이러스가 옮겨가길 바라는…
저주의 의미라 색다르게 느껴진 것이다.
둘째가 잠들자 ‘참봉’을 구글로 검색했다.
“조선시대 문관 종 9품 벼슬로
많은 관청에 속하는 관직이었다. “
'9급 공무원이구만…
왜 저주의 대상이 되었을까?
아~능참봉!!!'
"능은 임금의 조상의 무덤인 만큼, 엄격하게 관리해야 했다.
이를 위해 능에 소속된 수복이나 수호군이 있었는데,
능참봉은 주로 이런 사람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참봉은 최하위 말단 관직이나
수복 또는 수호군으로 편성된 마을 사람을 동원하여 노역을 시키거나
조세를 징수하는 실무자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1929년에 태어나신 할머님 고향은
경기도 파주 감악산 근처이다.
김참봉은 고종
혹은 그 이전 삼정의 문란이 극심하던 시대일 수도 있지만
종 9품 참봉 김가를 향한 저주는
개화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 6 공화국인 윤석열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