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에게 배운 교훈
반려동물에게서 배운 삶의 교훈
지금 사는 집에 반려동물이 없다.
육아와 맞벌이에 집중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반려동물은 여러 번 생각해도 무리이다.
약 10년 간 반려동물과 살면서 여건이 되지 못하면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것 외에 푸들과 고양이에게서 배운 내 삶의 교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 폭력은 교육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중학교 2 학년 때 검은색 털을 갖은 푸들이 집에 왔다.
당시 SBS의 동물농장이 인기였고 그 영향으로 친척집에서 분양받아 온 것이다.
어린 새끼는 아니고 약간은 성장한 시기였다.
사는 곳이 바뀌어서 그런지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했다.
그때마다 난 그 아이를 체벌했다.
벽 모서리에 서 있게 하고 앞발을 내리면 30cm 자를 세워서 종아리를 때렸다.
그리고 다른 실수를 해도 동일한 체벌을 가했다.
내 말은 아주 잘 듣고 집에서도 순둥이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누나 친구가 데려온 몰티즈를 우리 강아지가 심하게 물어버린 거다.
다행히 몰티즈는 죽지 않았지만 누나도 손가락을 물렸다.
내가 집에 귀가하자 우리 강아지는 누운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이때 깨달았다.
내가 이 아이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는 것을 말이다.
사교성은 없고 폭력성만 극대화된 아이로 만들고 말았다.
이때부터 체벌을 중단했다.
나를 보며 공포스러워하는 것은 점차 약해졌지만
부족한 사교성과 과한 공격성은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그 아이를 친척집으로 다시 보내고 말았다.
폭력은 결코 교육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정말 사랑한다면 때리는 자나 맞는 자 모두의 마음을 병들게 할 뿐이다.
2. 생명은 일반화될 수 없다.
아버지가 회사 공장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어미는 죽었는지 보이질 안아서 회사 직원들이 밥 주며 키우는 고양이란다.
아버지는 설 연휴 기간에 공장에 혼자 두면 죽을 것 같아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렇게 고양이가 우리 식구가 되었다.
1년이 못돼서 고양이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보고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새끼를 출산하기 전의 고양이 털은 비단보다 부드럽다.
아이를 출산을 하고 나면 빗자루 털만큼 뻣뻣해지고 만다.
홀로 있다가 새끼를 낳아서 그런지 모성애가 깊었다.
난 그 고양이 덕분에 모든 고양이의 모성애가 깊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고양이의 새끼가 커서 아이를 낳고 나서야 잘못된 생각임을 알았다.
엄마 고양이와 달리 이 아이는 새끼에게 관심이 없었다.
젓도 잘 물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생명체를 일반화하여 판단하는 것은 잘 못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를 교훈 삼아 언론 또는 인터넷 성에서 조선족, 일본인 등을 일반화하여 비난할 때 동의하지 않는다.
삶에 여유를 갖게 되면 다시 반려동물을 키워보고 싶다.
마누라, 아들과 함께 말이다.
언제쯤 그런 날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