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하다. 나의 외모와 성격을 보면 다들 믿지 않지만, 난 예민한 사람이다. 피부도 성격도 예민한데 내성적 성격 탓에 예민함을 티를 못 내니, 속으로 곪았다. 그래서인지, 위염과 위경련을 달고 살며, 무엇이라도 신경 쓰이는 날에는 가차 없이 새벽 3시 응급실 단골 환자가 되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멀미를 얘기하기 위해서 랄까.
들어는 보았는가. 비행기 멀미. 영어로는 Air sick.
나는 비행기 멀미가 있는지도 몰랐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의아해할 거다. 비행기 멀미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정도는 다 멀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뱃멀미와 차멀미 정도는 주변에 흔히 있지 않은가. 나도 차 안에서 책을 보거나 하면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멀미를 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누가 비행기 멀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겠냐고. 그것도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탄 것은 스물한 살 때, 다니던 태권도장에서 일주일 정도 태국을 간 적이 있었다. 시범의 목적으로 갔지만 관광이 주인 코스였는데, 난생처음 해외에 간다는 생각에 뭣도 모르고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있다. 첫 번째 여행에서 별 탈이 없었기에 나는 동생과 두 번째 여행을 준비했다. 동생과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일찍 와야 한다.'와 '아니다.'로 싸워서 그런지 정신이 많이 예민해져 있었 터였다. 비행기를 타고 30분도 되지 않은 시점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속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식은땀은 줄줄 나고,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미 상공에 떠있는 비행기는 나 한 사람의 멀미 때문에 멈추지 못한다. 차는 중간에 갓길에 세울 수라도 있지. 세울 수도 없는 비행기 안에서 몇 시간을 날아가야 하니, 비행기 멀미가 시작되면 패닉이 올 수밖에 없다. 왜 하필 한국어를 못하는 직원을 만났는지, 지나가는 외국인 승무원을 붙잡고 나는 증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I.. I have a headache and vomit... um.. just, just moment..."
그리고 그때 당시 핸드폰에 깔려있던 영어 사전에서 멀미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관련어에 비행기 멀미라는 단어를 보고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배웠다. 나는 그때 알았다. Air sick. 비행기 멀미라는 영어 단어를.
그 후 나는 제주도로 향하는 짧은 비행기라도 꼭 멀미약을 챙겼다. 다행히 처음 비행기 멀미를 시작할 때 친절한 승무원이 멀미약과 야돔(태국의 멘톨과 유칼립투스를 섞어놓은 오일, 향을 맡고 있으면 울렁임이 진정이 된다.)을 을 나눠주었지만, 매번 비행 시마다 상비약을 구비해 두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개인이 챙길 수밖에 없었다.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이 좋다고 하는데, 피부가 약해서 붙이기만 하면 피부가 가렵고 짓무르기 시작해 이번 여행에서도 액상으로 된 멀미약을 챙겼다. 신경성 위염을 달고 살아, 위경련이 자주 오는 나는 혹시 모를 위장약과 영어단어들을 적어 놓았다. 내 여행을 아픔 따위에게 망칠 수 없다!
비행기가 구름을 가르고 올라온 지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되자, 기내식이 나왔다. 우리는 LCC를 이용했기 때문에, 사전에 기내식도 미리 신청 해 두었다. 에어아시아가 말레이시아 LCC 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그렇듯 자국의 음식은 맛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우린 나시 르막을 사전 주문했다.
나시 르막은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요리 중 하나인데, 코코넛 밀크와 판단 잎을 넣고 만든 밥에 볶은 멸치, 볶은 땅콩, 오이, 삼발소스, 삶은 계란 등을 한 접시에 같이 곁들여 먹는 요리이다. 예전 원나잇 푸드 트립 시즌 1에서 이석훈 님이 쿠알라룸푸르를 갔는데 길거리에서 아침으로 파는 것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어느 음식점에 가도 기본으로 있고, 길거리에서도 아침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로 소개된 나시 르막은 한국의 비빔밥처럼 섞어 먹기도 했기에 우리는 삼발소스도 있고 무난한 맛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삼발소스가 매콤해 말레이시아 식 고추장이라는 설명들에 나름 안심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가장 큰 오산이었다. 참고로 우리는 향신료의 최약체이다. 고추장과 같다던 삼발소스가 향신료 범벅이다 보니 우리는 한입을 먹은 뒤에 더 이상 수저를 들 수 없었다.